1998 방콕부터 2018년 자카르타까지
아시안게임 첫 출장은 1998년 태국 방콕이었다. 숙소가 너무 외진 곳이어서 들락거리기가 아주 불편했던 기억.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싼 곳이지만, 시내 오가며 택시값으로 쓴 돈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접근성이 좀(?) 떨어져도 같이 모여 라면 끓여 먹을 수 있는 시설이 좋겠다던 회사 책임자의 묘한 취향 탓에..
박찬호가 야구 불모지에서 공을 던졌고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축구 8강전에서는 두 명씩이나 퇴장당한 태국에 골든골을 허용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기도 했고.. 럭비는 구기종목으로서는 흔치 않게 7인제와 15인제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방송센터에 거의 감금돼 매일 똑같은 볶음밥만 먹고 정말 아시안게임만 실컷 보다가 맞은 폐막일 직전 어느 날, 라디오 프로그램 연결하면서 몇 주 만에 들은 우리나라 라디오 방송. 음원 나온 지 9년씩이나 된 김완선의 ‘기분 좋은 날’을 들으며 어깨를 들썩였던 기억이.. '아후 아후' 그렇게까지 좋아한 노래가 아니었는데도..
2002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덕택에 대략 2년에 한 번 해외출장 다니는 맛에 살거늘 아쉽게도 그 흐름이 끊기고 만.. 숙소였던 ㅎ콘도에는 놀랍게도 방충망이 없어서 방마다 모기향 세 개씩 피우고 우리가 질식할 정도로 모기약 잔뜩 뿌리고 잤던 기억.
고3 기계체조 금메달리스트 김승일 군 따라하다가 생전 한 번도 움직여 본 적 없는 미세한 힘줄의 오묘한 진동을 느껴 보았고, 마라톤 이봉주 선수를 100여 미터 따라 뛰다가 정말 죽을 뻔하기도.. 스튜디오에서 며칠 동안 연거푸 만난 펜싱 선수들. 이후 본격 펜싱 중계로 이어지게 된 계기였을지.. 당시 남현희 선수가 여자 플러레 막내!
말 잘 통하고 각기 갈 곳이 많아 그런지 숙소에서나 일터에서 동료들 만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던.. ‘해운대 모처에 아무개 아나운서가 쓰러져 있으니 거두어 가 달라’는 경찰 전화를 받기도 하고.. ‘왜 하필 나한테.. 배달은 안 되나?’
처음 가 본 중동. 매일 아침 ‘쇠고기 베이컨’(!)을 먹었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외국인들이 입주하는 미디어 빌리지에서도 악착같은 짐 검사를 통해 주류 반입을 기어코 막고자 했던.. 그러나 참으로 장하다! 대한민국 체육인! 그리고 대한민국 방송인! ㅋㅋㅋ
류승민 선수가 경기중 실시간으로 똑똑히 다 들었다는 내 현장 탁구 중계. 연습장에 들어가 바로 1~2미터 앞에서 감상(!)한 중국 탁구, 그 궁극의 힘과 매력.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깊은 상처, 남자 핸드볼의 극심한 편파 판정! “옆에서 중계하던 제3국 중계방송단이 지금 중계를 하다가 볼펜을 집어던졌어요.”
폐막 후 귀국까지 그토록 귀한 시간이 하루씩이나 남았는데, 어디 딱히 갈 데가 없어 근처 슈퍼마켓과 철수 준비로 복잡하기만 한 국제방송센터에 모여든 가엾은 사람들. 돈은 석유가 벌고 일은 외국인들이 와서 다 해 주는 모래 위의 나라. 24시간 코란을 틀어놓았던 숙소. 메카를 향해 있는 화살표.
주변의 시(市) 몇 개를 구(區)로 편입시켜 정말 무지막지하게 몸집을 키운, 중국 광저우에서 벌어진 2010년 아시안게임. 방송센터가 있던 곳은 원래 다른 도시였던 곳. 따라서 어딜 가든 웬만한 데는 죄다 한 시간 이상! 마카오랑 붙어 있다고 해서 당일치기로 예정하고 떠났다가 하마터면 같은 날 못 돌아올 뻔도..
난데없이 불려 가 100km가 넘는 사이클 도로경기를 이틀 연속 해설 없이 중계하기도.. 남자 경기에서 레이스 대부분을 독주해 당연히 금메달을 딸 줄 알았던 우리 선수는 결국 막판 실격. 남녀 탁구는 일본에 완패했고.. 그러나 정영식, 양하은 등 새로운 세대의 부상! 여자 핸드볼은 충격의 결승 진출 실패. 남자 핸드볼은 도하에서의 아픔을 딛고 다시 금메달! 야구 우승!
‘왜 그렇게 작은 넷북을 가지고 다니냐?’니까 ‘무거운 걸 잘 못 들어서요!’라고 답한 바르셀로나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전병관 해설위원의 재치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 빛이 조금도 바래지 않는다.
2014년 인천! 사상 처음으로 전철 타고 아시안게임 출장을 가다! (말이 그렇고 실제로는 직접 차를 몰아..) 심지어 중간에 집에도 잠깐 다녀올 수 있었고.. 인천 아시안게임이었지만, 내가 맡은 탁구는 수원, 펜싱은 고양에서 진행돼 나름 애로가 컸다는..
리우 올림픽 남자 펜싱 에페 개인 금메달리스트 박상영 선수를 처음 본 것이 이 대회. 우리 펜싱 선수들은 남녀 개인/단체를 가리지 않고 전종목 메달을 따냈고.. 하마터면(?) 전종목 금메달 획득을 할 뻔도.. 여자 핸드볼은 금메달, 남자는 은메달. 카타르가 유럽 선수들을 귀화시켜 자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을 난데없이 차지하더니..
이상하게도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보다 불편하고 힘든 일이 더 많았던 대회. 폐회식 때 일군의 소년들이 ‘쏘리쏘리’란 노래를 힘차게 불러 부실한 대회 운영을 사과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년 뒤 평창의 성공이 있기까지 이 나라는 더 이상 큰 대회 유치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는..
이제 아시안게임 출장 20주년. 돌아보아 일일이 기억해 내기도 쉽지 않은 긴 세월의 이야기. 시내에 놀러 나가 카오산로드 몇백 원짜리 방에서 경험 삼아 하룻밤 자고 들어왔다가 선배들한테 많이 혼났던 방콕 막내 시절이 새삼 그립다. (당시엔 휴대전화가 흔치 않았고, 특히 해외사용은 비싸고 불편해서 연락이 쉽지 않았다는..) 20년 전엔 태국어를 공부해 가서 제법 잘 써먹었는데, 오늘날 인도네시아어 학습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 나름 노련한 맛이 있겠거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도 KBS와 함께!
대회 수준이 매번 반드시 나아져야만 하는 거라면 아시안게임을 유치할 수 있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베트남씩이나 되는 나라가 포기한 유치권을 불과 4년 전에 고맙게 받아 주어 이번 대회를 치를 수 있게 해 준 인도네시아에 감사한다.
Nothing’s to be taken for granted. 당연한 것은 없다. 역사책에는 매우 짧게 기술돼 있을지언정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오는 과정은 대단히 지루하고 퍽이나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목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인도네시아도 우리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짝홀수제를 해도 밤낮없이 막히는 길. 큰 길 하나에 차가 너무 많아 더 큰 길을 냈지만, 더 큰 길에는 더 많은 차들이 모여들어 결국.. 이들도 우리도 이 욕망의 한 길로만 모여들어서는 안 될 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