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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맑은 기상으로 가득한 집

2대에 걸친 상문고 동문 가정

by 최승돈

‘두 명 중 한 명은 서울 가는 게 맞지 않나?’


그 옛날 한없이 이상한 상문고등학교의 학부모셨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실제 학교를 다닌 내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가 정상화되고 그사이 매우 훌륭해지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과거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은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상문의 흑역사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 엄마만 요즘 평판이 정말 좋은 학교에 아이가 다니게 됐다며 반색할 뿐. 아들뿐만 아니라 여동생 아들인 조카 둘까지 결국 네 명이 모두 상문 배정을 받아 우리 가정은 2대에 걸쳐 순도 100% 상문 가정이 되고 말았다.


학교의 눈부신 변화를 지속적으로 보아온 덕에 친구들이 좀처럼 믿지 않는 증언도 기회가 있는 대로 적극적으로 해 오던 터였지만, 정작 아들이, 또 조카가 대를 이어 입학을 하는 것은 그렇게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입학하는 날부터 정말 신이 나서 학교를 다니는 것만 같았다. 진짜 좋아서 또 행복해서 다니는 학교. 친밀하고 열정적인 선생님. 훌륭한 수업에 다채롭고 유익한 각종 활동. 똑같은 공간에서 어쩌면 이렇게 다른 일이 펼쳐질 수 있을까? 말죽거리 잔혹사, 두사부일체는 이제 과연 어디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실컷 맞았다는 얘기, 낮은 포복으로 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을 빙빙 돌았다는 얘기, 이상한 노역에 난데없이 동원됐다는 얘기 같은 건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머리를 극단적으로 빡빡 깎은 수천 명의 재학생들이 추운 겨울 청소용 왁스(!)를 태워 꺼져가는 난로의 불기운을 잠시 살리고 산속으로 땔감 구하러 다니던 때 얘기를 하면 요즘 후배들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내가 학생이고 제자이기보다 실은 돈이었던 시절 ‘밤비 내리는 교련실(!)을 홀로 닦는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양심적인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학교가 변화하기 시작해 재학생, 졸업생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학교가 모두의 자부심으로 가득한, 또 자부심 가져 마땅한 학교가 되어 있음을 온 가족이 온몸으로 깨우쳐 알게 되었다. 없던 축제가 생기고 새로이 좋은 전통을 세우기 원했던 애교심 강한 후배들이 '서울고 축제에서 풍선을 세 개 띄웠다면 우리는 네 개를 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목도하기도 했다.


영영 꽃이 피지 않을 줄 알았던 땅에서 오만 가지 고운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흔치 않게 천문대가 있어서 저 멀리 빛나는 별을 더 크고 더 밝게 바라보는 학교. 미더운 슬기는 찬란히 빛나고 높은 뜻은 온 누리에 빛이 될 것이다.


‘축구부 응원하러 가야지.’


- 상문고등학교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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