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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Mar 09. 2023

향수 鄕愁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녹슨, 노란색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향한다

동명초등학교 앞에서 이발소 옆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죽 들어가면 작은 공터에 우물이 하나. 나무로 적당히 지은, 천장 높은 정미소가 굳이 따지면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작은 구멍가게 이름은 규모와 달리 송정슈퍼. 원래 송정상회였던가? 거기서 차가 지나다니지 못하는 더 좁은 길로 사오십 발자국 뛰거나 걸어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휘어진 길 한켠에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큰댁이 있었다.


고추밭 양옆으로 사람의 출입이 가능했는데 정작 문은 없었다. 마당 한귀퉁이에서는 몇년 단위로 바뀌는 개가 짖고.. 집 한 채를 가로 세 칸, 세로 두 칸 격자로 나눈 단순한 구조의 전형적 북방식 가옥. 벽 윗쪽에 구멍을 뚫어 형광등은 위아래 두 방에 하나. 거의 모든 문이 미닫이였고 알뜰한 큰아버지께서 솔잎(강릉말로 소갈비)과 지푸라기 그리고 땔나무를 잔뜩 주워다 산더미처럼 쌓아 놓으신 탓에 오래도록 아궁이에서 연탄도 아닌 짚과 나무를 태우던 집. 부엌에는 큰 가마솥이 있었고 밖에는 짙은 갈색의 완전수동 물펌프가 하나 있었는데 마중물 붓고 물 뽑아 올리는 펌프질이 꽤 재미있었다.


본채와 직각으로 선 창고가 하나 있었다. 주로 농기구를 보관하던 곳인데 생활공간이 아니라서 창문도 없고 조명도 부실하다 보니 들어가 문 닫고 있으면 대낮에도 많이 무서웠다. 화장실은 당연히 재래식. 휴지는 달력, 신문지, 전화번호부 등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은.. 늦은 밤 어둠을 뚫고 화장실 다녀오기는 정말 싫었다. 특히 무서운 얘기나 흉흉한 사건사고 뉴스를 많이 접한 날에는 더더욱..


어느날 뒤뜰에 나가 보니 큰아버지께서 (사거나) 주워 오신 자전거가 자그마치 일곱 대씩이나 되었다. 어떻게든 굴러가는 건 단 석 대뿐. 개중 가장 나은 걸 골라 타고 경포까지 휘 내달렸다. 돌아오는 길 체인이 빠져나와 톱니바퀴와 프레임 사이에 콕 박혀서 꿈쩍도 않는 걸 억지로 빼내느라고 어마어마하게 애를 먹기도 하고..


솔밭에서 말수 적으신 할아버지와 함께 연을 날리던 기억도.. 소낙비 맞으며 아버지와 함께 남대천 제방을 신나게 내달린 기억과..


바다!




왜 문득 고향 강릉의 그 집, 그 마을이 또 떠오르나 했더니 오늘이 바로 거기서 가장 늦게까지 산 사촌누이의 음력 기일이었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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