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과 고모라

창세기 읽고 쓰기 09 (창세기 19장)

by 최승돈

아기는 잠시 잊자. 우리는 오늘 소돔으로 간다. 아기 걱정은 하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내년 이맘때'를 언급하시며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기가 곧 태어날 것을 말씀하셨다.


두 명의 천사는 악한 도시 소돔에 도착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만나게 된다. 피는 못 속인다고 롯도 삼촌처럼 손님맞이에 열심이다. 그러나 롯이 대접한 음식은 갓 구워낸 무교병 정도. 아브라함이 베푼 성찬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좀..


그런데 갑자기 매우 이상한 소동이 일어난다.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창세기 19:4-5)


소돔 백성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오만 군데서 몰려나오더니 타지 사람을 강간하겠다고? ‘털어 먹겠다’, ‘벗겨 먹겠다’ 같은 느낌의 비유적 표현? 혹 당시 유행한 관용구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요즘도 상상하기 힘든 괴이한 일이 어떻게 수천 년 전 그 옛날에 일어날 수 있었을까? 아담과 이브 이래 너무도 오랜 세월 계속된 인류의 타락! 노아의 홍수도 결국 소용이 없었고, 오늘날 우리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는 큰 문제가 여전히..


롯은 천사들을 보호하려 애쓴다. 그러나 정신 나간 소리를 하긴 마찬가지.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창세기 19:8)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제정신으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모두 단단히 미쳤다. 일이 갈수록 이상해지기만 한다.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창세기 19:9)


모든 죄인들이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 죄를 고백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와 같은 경우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소돔 사람들은 결국 이러한 소동과 함께 구원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창세기 19:10-11)


천사들은 급기야 초능력을 사용해 자신과 롯을 구해낸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그리고 재앙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롯에게는 주위 사람을 설득해 단 몇 사람이라도 더 구해낼 수는 있는 매우 약간의 시간이 있었을 뿐.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세기 19:14)


농담으로 여기든 말든, 우리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죄로 인해 다 죽게 되었음을 알릴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자들에게 이와 같은 파수꾼의 사명을 주신 것.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에스겔 33:7-9)


드디어 운명의 날! 성경의 묘사가 너무도 생생해서 달리 더할 얘기가 없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창세기 19:15-17)


그런데 이상도 하지! 롯은 천사의 말을 있는 대로 다 듣지 않는다.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창세기 19:18-19)


연로한 롯이 짧은 시간에 먼 거리를 이동하기가 어려울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얘기는 우리의 흔한 상상과 매우 다르기만 하다.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창세기 19:20)


극악한 도시 생활이 이제 지긋지긋할 때도 됐는데.. 머물러 살던 도시는 이렇게 끔찍한 파국을 맞았는데.. 하지만 도시에서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일까? '작은 도시면 괜찮지 않을까?' 이 와중에도 도무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천사는 롯의 요청을 들어주었고, 롯의 가족은 '작다'는 뜻을 가진 '소알'이란 이름의 성읍을 향해 간다.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창세기 19:23-26)


죄의 삯은 사망이라 (로마서 6:23). 반드시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여 살라. 주님께서 ‘돌아보지 말라 (창세기 19:17)’고 하셨으면 돌아보지 마라. 다 당신 위해서 하는 얘기다.


또 우리는 중보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롯은 순전히 자기의 의와 노력으로 인해 화를 면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창세기 19:29)


야고보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야고보서 5:16)’고 썼다. 모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형제자매들의 기도를 늘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롯과 롯의 두 딸은 작은 성읍 소알에 쉽게 정착하지 못한다. 모르긴 몰라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이었을 듯.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 심각한 일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그래서 그들은 소알을 또 떠나 결국 동굴에서 거주하게 된다. 작은 성읍에서 생명이 보존될 거라더니..


그러던 어느 날 부도덕한 성적 욕구가 두 딸을 휘감는다. 아마도 소돔에 살던 시절 너무도 익숙했던..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창세기 19:31-32)


두 딸은 한 명씩 술 취한 아버지와 동침을 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두 딸은 각기 모압과 암몬, 이방족속의 조상이 된다. 부패한 족속의 역사가 또 이렇게 시작되었고, 두 족속은 이스마엘의 후손 마냥 선택하신 백성과 원수 사이가 되고 만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라디아서 5: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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