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1장 다시 읽기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요나 1:6)
우리 귀에 닳고 닳은 이 구절, 이 문장의 느낌은 실제상황과 얼마나 부합할까? 너무나 익숙한 우리말 성경을 일단 덮고 중국어 성경을 잠시 펼쳐 느낌이 오는 대로 새롭게 해석을 해본다.
你這沉睡的人哪,為何這樣呢?起來,求告你的神!或者神顧念我們,使我們不致滅亡。(1:6)
‘너 여기 푹 자는 사람, 어쩌자고 이 모양이냐? 일어나 너의 신께 구하고 고해라. 혹시라도 우리를 생각하셔서 우리가 결국 멸망하지 않게 하시도록 어떻게 좀 해 보라고..’
세상이라는 한 배를 타고 항해에 나선 다양한 사람들. 감당이 되지 않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다들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한다.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요나 1:5)
어떤 설교자는 ‘다른 신은 아무리 불러 봐야 소용이 없고 반드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로 이 구절을 풀어가기도 하는데, 나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 얘기의 전후 맥락과는 잘 맞지 않는 듯하다. 난파를 예견했고 주님의 뜻에 따라 일행을 잘 이끌어 결국 항해를 온전히 마무리할 수 있게 한 것은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 사도의 일이었고, 요나는 풍랑 중에 배 밑에 내려가 잠을 자고 있었다는..
loin de la présence de l'Eternel
개정개역 요나서 1장 3절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를 비교적 최근 번역된 프랑스어 성경(Segond 21)에서 찾아보면,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멀리’라는 좀 더 구체적이고도 엄중한 느낌을 가진 표현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를 벗어난 공간이 도대체 어디 있겠느냐마는, 요나는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요나 1:9)
이 모든 사태의 원인제공자로 지목된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그로부터 도망한 자답지 않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요나 1:12)
심청전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부분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요나 1:14)
함께 배를 탄 다른 사람들은 마지못해 요나를 물에 던지는 것이지 이 일은 절대로 본의가 아님을 애써 주장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요나 1:13)
요나를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나름 애쓴 것도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요나는 왜 그리고 어떻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굳이 말하게 되었을까? 말씀을 여러 번 훑어보아도 그 근거를 쉽게 찾기 어렵다. 여러 정황을 미루어볼 때 숭고한 살신성인의 결심을 쉬 단정할 상황도 아니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