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표적

요나서 2~4장 다시 읽기

by 최승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2:39)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달리 보일 표적이 없다는 말씀을 하신다. 마태복음뿐만 아니라 공관복음인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거의 같은 말씀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보여 줄 표적이 없어서 큰일이라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이 말씀은 '안 그래도 요나의 행적이 꼼꼼하게 예표하고 있는 나의 십자가 사역이 곧 있을 것이고, 이것이 내 사역의 핵심일진대, 어찌해도 믿지 않을 불순한 너희들에게 이 밖에 또 다른 무슨 표적을 공연히 보이랴?'는 뜻이 아니었을까?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마태복음 12:4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 사흘동안 음부에 내려가 계셨던 사실을 이보다 더 온전히 예표한 일은 없으리라. 이것이 요나의 표적이 이야기하는 아마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일 것이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태복음 12:41)


요나의 표적에 대한 언급이 한 절 더 이어지는데 심판날에 이방 니느웨 사람들이 뭇사람들을 정죄할 거란 얘기. 특별히 니느웨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로?


요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곧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둘러보는 데만 사흘길이나 되는 아주 큰 성읍이다. 요나는 그 성읍으로 가서 하룻길을 걸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요나서 3:3~4 새번역)


어떤 역본은 둘러보는 데 사흘이 걸리는 큰 성이라고 하고, 어떤 역본은 가로질러 가는 데 사흘이 걸리는 큰 성이라고 한다. 여하튼 니느웨는 매우 큰 성이고, 이리 누비든 저리 누비든 적어도 사흘은 훑어야 제대로 훑었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큰 곳이란 얘기다. 그런데 요나는 며칠 동안 사역을 했다고? 단 하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원수요 죄로 따지면 더할 곳이 없는 앗수르의 니느웨가 과연 어떻게 되었던가?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서 3:5~10)


요나는 기뻐했을까? 적당히 했던 사역이지만 큰 성과가 있어서?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요나서 4:1)


전혀 아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요나서 4:2~3)


기껏 살려서 썼더니 이제 또 죽여 달라고? 뼛속 깊은 민족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성격 참 특이한 사람이다. 흔히 떠올리는 선지자 이미지가 전혀 아니다.


나는 2008년 도쿄에서 일본 선교 기간 중 이런 글을 쓰고 여러 사람 앞에서 읽은 적이 있다.


몇 주 전 저는, 한국에서 반일교육을 많이 받았을 사람이 왜 일본으로 선교를 오는지를 묻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사실 한국사람들이 학교에서 반일 교육을 받지는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오직 역사의 진실을 다룰 뿐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또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로 인해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 대해 적잖이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에 쓰는 편지 - 2008년 일본 선교)


한국사람으로서 제게는 여전히 껄끄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나라에 온 것을 너무도 기뻐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의 또 다른 국적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20절을 통해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 말씀하였습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제 시민권은 땅에도 있지만 하늘에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에 와 느끼게 되는 마음의 불편함은 여전하지만, 이 나라에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결국은 같은 천국의 시민권을 누리게 될, 결국은 같은 나라 사람이 될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으니 저는 기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 쓰는 편지 - 2008년 일본 선교)


유달리 훌륭한 성정을 갖고 있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누구나 구원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멀리 - 요나서 1장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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