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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Feb 10. 2024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나의 노래 이야기 Thank You for the Music

즐겨 보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몇 명의 남성 개그맨들이 ‘낭랑 18세’를 함께 부르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노래가 참 흥겹고 재미있더라는.. 며칠 뒤 친구집에 갔는데 친구 아버님 갖고 계신 카세트테이프 가운데 ‘낭랑 18세’가 있는 걸 보고 테이프를 빌려다가 집에서 실컷 듣고 따라 하게 되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중학교 출신도 없었고 그래서 가까운 아이가 그리 많지 않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환경미화 할 때였나? 다 같이 교실 청소를 하는데 나는 어느 틈엔가 ‘낭랑 18세’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 이 노래가 다른 아이들의 관심을 그렇게 모을 줄은 몰랐다.


구린 것으로 가득했던 학교였던지라 이후 비판적인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 부른 것까지 내가 부른 ’낭랑 18세‘의 인기는 참으로 상당했다. 누가 부르는 노래인지 너무도 뻔했던 탓에 바꾼 가사에 대한 학교의 제재를 우려해 적당히 부르려 애썼던 기억도 있다.


고등학교 다니던 중에 성적은 가장 나빴지만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2학년 때, 친구들은 입을 모아 신곡을 요구해 왔다. 기대에 부응해서 새롭게 터뜨린 곡은 바로 ‘홍콩 아가씨’. 반응은 역시 뜨거웠고, 이어서 3학년 때는 ‘청춘의 꿈’을 히트시키기까지..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대학에 들어가며 나는 진정한 인생의 봄을 맞는다. 아직 노래방이 없던 시절, 모든 사람이 각기 몇 곡의 애창곡을 죄다 외워서 불러야만 했던 때에 나는 이른바 ‘트로트 메들리’를 혼자서 43분 동안 부르기까지 했다. 동석했던 친구가 작정하고 계측해 본 바 그날 그런 기록이 나왔을 뿐, 실제로는 끊임없이 더 오래 부른 날이 따로 또 있었을 수도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가장 사랑받았던 곡은 ‘청포도 사랑’이다. 이 곡을 부른 건 고등학교 때 교회의 성인 성가대 야유회 따라갔다 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어르신들께서 모처럼 돌아가면서 가요를 부르시는데 당시 반주자셨던 집사님께서 부르신 노래가 트로트인 듯 트로트 아닌 듯 절묘한 느낌에 특유의 상큼한 맛을 가진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내 나름의 해석으로 흥겹게 부를 때마다 반응은 뜨거웠다. ‘청포도 사랑’은 이른바 나의 대표곡이 되었고, 나는 어디서나 이 곡으로 분위기를 휘어잡을 수 있었던 데다가, 준거집단이었던 학교 방송국 가요계는 나와 이 노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승돈아! 네 시대도 끝났다.”


군 복무 중 신입생 환영회에 한 번 가지 못했더니 상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나 보다. 3년 후배 웬 녀석이 트로트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데 율동까지 갖췄단다. 나중에 직접 보았는데 과연 그랬다. 이 친구가 부른 노래가 다름 아닌 ‘만리포 사랑’이다. 참 좋은 노래였다. 학교 방송국 가요 판도가 바뀌었다.


시간이 또 흘러서 사람들이 ‘청포도 사랑’도 너무 많이 듣고 ‘만리포 사랑’도 너무 많이 들어 버렸을 때 학교 방송국 전통 가요계를 되살리는 차원에서 ‘히트곡 바꿔 부르기’를 하자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후배가 ‘청포도 사랑’을 부르고 내가 ‘만리포 사랑’을 부르는.. 우리 두 사람 말고는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여하튼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 취직 후 회사 사람들은 내게 ‘청포도 사랑’보다 ‘만리포 사랑’을 더 많이 청해 오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 또 대학교 때 사랑을 많이 받았던 노래를 부르며 일평생 넘치는 사랑과 함께 산다. 전국노래자랑에서 노래하는 걸 보신 작곡가 박성훈 선생께서 ‘영원한 친구’란 곡을 써 주셔서 실제 가수가 되기까지..


’친구야! 이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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