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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Nov 03. 2020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중계를 하러 현지에 가면, 대개 미디어 빌리지(Media Village, 媒体村)에서 숙식을 하며, 국제방송센터(International Broadcast Centre, IBC, 国际广播中心)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현장 중계석(commentary position)을 확보한 경우 현장에 가서 중계를 하게 된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내 경우엔 참 지독하게도 동선이 길었다. 구리쯤 되는 곳에서 자고, 종로에 가서 버스를 갈아탄 뒤, 인천에 가서 중계를 하고 돌아오는 일을 올림픽 기간 내내 반복했던 것. 숙소 동쪽  바로 옆에 바다가 있었고, 경기장 서쪽에 바다가 또 있었는데, 결국 아테네 시내를 사이에 두고 동서해를 거의 매일 왔다 갔다 한 것이다.


여자 핸드볼 결승전이 있던 날은 확실히 특별했다. 회사에서 미디어 빌리지 입구에 승용차 한 대를 배차해 주었던 것. 이 차를 타기만 하면, 경기장까지 편안하게 한 번에 가는 것이다. 결승전이 벌어진 헬레니코 아레나 중계석은 국내 방송사 어디도 구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 전 부랴부랴 중계석을 확보했고, 그야말로 독점 현장 중계를 위해 이른 아침 미명에 길을 나섰다.


평소엔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쯤 간략하게 정리하는 선수 명단. 이번만큼은 하루 전 숙소에서 샤워 재계 후 평소 두 배 크기의 종이에 역시 평소보다 두어 배나 되는 많은 정보를 담아 미리 정리해 두었다. 김현태 아나운서로부터 정장을 빌려 입고 경기장에 도착, 우리만 현장에 와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오프닝 영상을 후닥닥 찍어 국제방송센터에 보낸 뒤 우리는 지극히 흥분된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기 시작했다.


각국의 중계진이 찾아와서 우리 선수들 이름 읽는 법을 물어봤다. 때 아닌 한국어 교실이 대성황을 이뤘다. 어렵게 구한 만큼 체육관 가장 뒤쪽에 자리했던 우리 중계석. 우리는 기꺼이 내내 일어서서 중계를 했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아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도 했고, 또 도무지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하기도 했고….


명승부는 애를 쓴다고 막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사실 선수들이나 관계자들은 되도록 쉽게 이기는 것을 원하지, 애초에 명승부를 바라지 않는다. 명승부는 선수들을 마냥 지치고 힘들게 하기만 할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두 팀 모두 결코 원하지 않았던(?) 명승부 중의 명승부?!


두 점 차 이상을 허용하지 않은 박빙의 전반전은 14:14로 마무리되었다. ‘두 팀 다 참 잘하는구나!’ 우리 팀이 예상과 달리 1-2-3 수비 대형을 쓰지 않고 6-0 대형을 유지한 것이 특이하기도 했고…. 여하튼 참 결승전다운 결승전으로, 선수들은 힘이 쪽 빠졌을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은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전반전이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지켜본 후반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전후해 널리 알려진 축구의, 또 히딩크 감독의 ‘파워 프로그램’은, 사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국내 핸드볼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활용되고 있었다. 구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 괜히 핸드볼에서 나온 게 아니란 얘기. 신체조건이 좋은 서양 선수들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체력이다. 보름 남짓한 대회 기간 내내 거의 빠짐없이 격일로 계속된 경기, 그 가운데 마지막 경기인 결승전의 후반전은 결국 체력 싸움일 수밖에 없다.


파워 프로그램으로 체력이 뒷받침된 우리 선수들. 후반 초반 분위기는 대단히 좋았다. 허순영의 연속 득점, 오영란 골키퍼의 선방 등으로 석 점 차로 앞서가기까지 했다. 그러나 중반 이후 석연치 않은 몇 번의 심판 판정과 함께 오히려 덴마크가 석 점 차로 앞서게 되면서 남은 시간은 대략 5분. 패색이 짙어갔다.


그런데 중계하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화장실에 급히 가고 싶어지면 승부가 얄밉게도 연장전까지 가는 것. 그렇다면 적어도 이날엔 소변 마려운 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고통스럽긴 했지만, 변의를 통해 직관적으로 가져 본 희망, ‘연장전에 가게 될 것이다!’


결국 이 쑥스러운 예감과 계시는 그대로 맞아떨어져서, 후반 막판 5분 동안 실점은 없이 최임정, 문필희, 장소희의 연속 득점으로 승부는 25:25, 기적 같은 동점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후반 종료 3 초를 남겨 놓고는 금메달을 결정지을 수 있는 프리 스로우를 얻기까지…. 그러나 연장전으로 가야만 하는 필연 때문이었는지 그 프리 스로우가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고….


“아! 이 피 말리는 승부가 이제 또 연장전을 향해 갑니다.”


오영란 골키퍼의 선방과 문필희의 눈부신 활약 덕택으로 1차 연장전은 우리가 오랜 시간 주도해 나갔다. 그러나 종료 약 2분을 남겨놓고 허순영이 2분간 퇴장을 당하면서 29:29 또 동점을 허용하기까지…. 이 와중에 우리의 마지막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고, 종료 약 20초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덴마크의 공격 기회가 이어졌다. 주면 진다. 그러나 다행히 오영란이 막았다.


연장전에 접어들면서 중계석 안팎에서 숱한 사람들이 확인하고 또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대회 규칙. 규칙엔 있지만 조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또 숱한 사람들이 일평생 듣도 보도 못한 2차 연장전이 시작됐다.


승부는 여기서 가려졌어야 했다. 우리  골키퍼들의  대회 7m 스로우 방어율은  자릿수에 머물러 있었고 덴마크는  자릿수였던 상황.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중계석에서는 승부 던지기로 가면 절대 불리하다는 판단을 이미 하고 있었다.


2차 연장 초반 덴마크의 우세를 뒤집고 두 점 차까지 앞서 나갔던 우리. 그러나 역시 종료 약 2분을 남겨놓고 심판이 명백한 오심을 통해 공격권을 덴마크에 넘겨주었고 또 항의하는 임영철 감독에게 경고까지 주면서 경기는 흐름이 또 바뀌어 또다시 33:33 동점. 하지만 종료 20여 초를 남겨놓고 김차연의 득점으로 34:33. 이제 버텨만 주면 되는 거였는데….


“나하고 약속 하나 합시다. 만약에 지더라도 절대 울지 않기로…. 결과가 어떻게 되든 여러분은 여러분 생애의 최고의 순간을 보여줬습니다. 저에게도 지금이 생애 최고의 순간입니다. 나는 오늘 진심으로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힘내고 끝까지 한번 가봅시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중 승부 던지기 직전 극중 인물인 안승필 감독)


패배도 참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는 이전에도 없었고 아마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핸드볼은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우리 선수들 울지 마세요. 하지만 기쁨의 눈물이라면 마음껏 흘려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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