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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Nov 05. 2020

도하의 醜억

2006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핸드볼

‘중동의 맹주요, 이슬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마지막 경기는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4강 진출에 실패!’


아시아연맹 회장국인 쿠웨이트와 개최국인 카타르, 그리고 이란이 실력과 무관하게 메달을 나눠 갖기로 각본이 이미 짜여 있다는, 무성한 소문 속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기껏 유니폼 문제로 트집이 잡혀 마지막 경기는 해 보지도 못한 채 4강 문턱에서 억울하게도 탈락하고 만 것이다. 아시아핸드볼연맹은 규정에 따른 대회 진행이라 주장했지만, 사전 연락에도 문제는 확실히 있었고, 이후 이 문제를 해결할 충분한 여지를 애써 주지 않았음이 공지의 사실이다. 마각은 이미 확실히 드러나 있었다.


우리가 4강까지는 무난히 진출했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참으로 어색하게 반복되는 음모의 현장! 앞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할지 뻔히 예상이 되는,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답답한 상황! 매일 현장을 출입한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수가 없을까요?”

“안 될 거다.”


1989년 국제핸드볼연맹(IHF)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 한국 핸드볼의 얼굴로 오랫동안 핸드볼 국제무대에서 활약해 왔던 강재원 해설위원의 대답은 의외로 짧고 분명했다.


개최국 카타르와의 준결승전. 경기장엔 처음으로 만원 관중이 들어찼고, 한산하던 주변 중계석도 적잖이 부산했다. 카메라 망원렌즈를 통해 중계석 건너편을 자세히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대회 진행 관계자 한 사람이 경기 전 몸 푸는 시간 내내 박도헌 감독에게 계속 시비를 해 오는 게 아닌가? 얘기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유니폼을 갖고 시비를 하는 게 분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이미 한번 써먹은 수법. 우리 선수들은 몸을 풀다 말고 탈의실로 돌아가 만약에 대비해 준비해 온 다른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이 경기는 외견상 카타르와의 경기지만, 사실상 쿠웨이트 심판과의 대결입니다”


남자 핸드볼 준결승전은 국내에 후반전부터 실시간으로 중계가 되었는데, 나는 이미 전반전, 아니 그 훨씬 전부터 바로 그 불의의 현장에서 불공정과 부조리의 극치를 체험하며, 일종의 고문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한 마디, 한 마디 비명을 지르는 심정으로 중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팀이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훈련시간은 늘 부족하기만 하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그 귀한 훈련시간을 쪼개서 편파 판정에 대비한 특별 훈련을 오랫동안 해오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런 훈련을 꼭 해야만 하는지….’ 여하튼 우리 선수들은 이 경기를 통해 오심 대비 훈련의 성과를 원 없이 실컷 보여 주었다. 오버스텝을 의식해 되도록 한 발씩 덜 뛰고, 라인 크로스를 의식해 아예 골문 10m 전방에서 슛을 던지고….


그러나 한 발을 더 뛰어도 되는 카타르 선수들에게 한 발을 덜 뛰어도 될까 말까 하는 우리 선수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극단적인 점수 차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극단적인 점수 차이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바로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었다.


‘이런 경기에 과연 끝까지 응할 필요가 있었을까?’ 경기에 불응할 경우 아시아연맹은 기다렸다는 듯 제재를 할 속셈이었고, 제재를 받게 되면 이후 올림픽 출전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닐 수 없었다.


쿠웨이트 심판은 이 경기를 위해 그 나름 또 많은 것을 준비해 왔다.


“아! 레드예요. 옐로카드는 아예 안 가지고 나왔나요? 옐로를 줘도 억울한 상황인데 레드를 꺼내는군요.”


“훌륭한 우리 선수들에게 중동 심판이 내미는 것은 카드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2분간 퇴장을 명하는) 두 개의 손가락. 좋은 선수들의 (좋은) 경기를 도무지 마음 놓고 볼 수 없는 도하 아시아 경기대회입니다.”


심판에게는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이름난 선수부터 차근차근 경기장에서 쫓아냈다. 표적이 된 선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갔다.


“아! 또 왜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 찾아가서 레드카드를 주나요? 아니 지금 경기장 안에 있는 사람도 보기가 힘든 판에 어디 (벤치에) 앉아있는 백원철 선수를 억지로 찾아가서 거기에 카드를 내밉니까? 참 시야도 넓은 심판입니다.”


짜증이 난 것은 단지 내가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아! 지금 저희 옆에 제3국의 중계방송단이 있습니다. 지금 중계를 하다가 볼펜을 집어던졌어요. 자, 이런 거 (볼펜 집어던지는 것 같은 것) 중계를 해 드려야 되는 날입니다. 그래야 이 경기의 참 내용을 더 잘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두 개의 규칙을 가지고 와서 경기를 자기 마음대로 주물러 댔던 쿠웨이트 심판. 그 뒤에는 아시아핸드볼연맹 회장이며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의장인 쿠웨이트 왕자 세이크 아마드 알 파하드 알 사바가 버티고 있었고….


“스포츠는 스포츠이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스포츠 아닌 것들에 의해서 스포츠가 왜곡된다면 우리는 어디서 또 희망을 찾아야 되겠습니까? 지도를 보면 승패를 알 수 있는 경기. 이런 경기가 다시는 없어야 되겠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우리 선수들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해 주었습니다. 졌습니다만,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핸드볼 선수단입니다.”


“카타르 선수들이 춤을 추는 모습보다 우리 선수들이 박수를 치면서 스스로를 격려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고 보기에 좋습니다.”


경기 종반, 혈혈단신 적진 한복판에 뛰어들어 보란 듯이 중거리슛을 성공시키고 골문으로 돌아온 박찬영 골키퍼의 모습이 왠지 안중근 의사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쉽사리 기억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여하튼 이렇게 기술적인 내용이 변변히 없어도 한 경기의 진면모를 별 유감없이 되새길 수 있는 경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정말 큰 비극이다. 1986년 이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아니면 따 본 적이 없던 우리나라 남자 핸드볼에 도하는 큰 굴욕의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2006년 도하의 떳떳한 노메달 굴욕을 뒤로한 채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의 이름과 정의의 깃발까지 부여잡고 또다시 힘차게 달려 나간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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