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금석배 전국고등학생축구대회 8강전
한 달여 전 금석배 대진표가 처음 나왔을 때 생각했다. ‘그동안 팀이 많이 성장해서 그런지 딱히 부담스러운 상대가 없다. 그런데 딱 하나.’
평택진위FC는 2020년 창단된 팀으로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지만, 프로 산하팀에 준하는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면서 짧은 기간 엄청난 성적을 기록해 오고 있는, 그야말로 급을 달리하는 초강팀이며 최강팀이다. 2년 전 우리 상문고등학교가 사상 처음으로 전국대회 결승에 올랐을 때도 상대는 진위였는데 결승전 스코어가 자그마치 0:4였다. 올해 살짝 앞서 열린 다른 대회 3학년 경기에 같은 클럽 2학년 선수들이 출전해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만약 이번 대회에서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하면 놀랍게도 5회 연속우승을 기록하게 된다.
2년 연속 전국대회 결승에 진출하며 팀의 내실을 다져온 상문고등학교는 조별예선 세 경기를 무난히 이기고 16강에 직행했다. 대진표 추첨. 대진표에서 진위 반대쪽으로만 가면 최소 준우승이 정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추첨의 대가, 이른바 ‘신의 손’이라 불리는 위현범 수석코치가 이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16강전을 이기고 올라가면 8강전에서 진위와 맞붙게 된 것. 같은 팀에 진다고 해도 8강에서 지는 것과 결승에서 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학교마다 입시 요강이 다르지만, 8강 성적을 가지고는 상위권 대학에 원서나 겨우 써 보는 정도. 우승을 해도 최상위권 대학 입학이 될까 말까인데.. 축구 선수들의 수능에 비견되는 전국대회. 킬러 문항을 일찍 대하게 되었다.
질 확률이 지극히 높아 보이지만, 절대 져서는 안 되는 경기. 마법이 따로 없다면, 방법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기본 4백에 양쪽 측면 날개도 수시로 내려서 수비 숫자를 1.5배로 늘렸다. 득점에 능한 성훈 군이 전방에 포진하고, 역습 상황 다른 빈 공간이 생기면 승선, 태윤 등이 차분하게 득점을 노린다. 적어도 초반 실점을 하지 말아야 하고, 되도록 비기는 경기를 해서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는 것이 이길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시작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정리할 즈음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전반 4분, 너무 일찍 골을 허용했다. 그다지 절묘한 골도 아니었고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거듭해 생각해 보았다. ‘시작부터 이렇게 무너지나?’
하지만 전반 28분, 두 번 연달아 차게 된 코너킥에서 서성훈의 골이 터져 나왔다. 1:1. 가능성이 다시 샘솟는다. 그리고 전반 종료 직전, 이틀 전 내가 선수 본인에게 예언했듯이 유승선 군의 역전골이 터졌다. 2:1. 경기를 뒤집어 놓았고 평택진위에 앞선 가운데 후반전을 맞는다!
후반 중반 이후 경기의 흐름이 많이 넘어갔다. 하지만 우리의 집중력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상대의 슈팅은 우려했던 만큼 많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수비를 잘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후반 28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빤히 보이는 상대의 슈팅이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얄궂게도 쏙 들어와 버리고 만다. 다 잡았던 고기를 놓치는 느낌. 흐름상 경기가 다시 뒤집힐 수도 있고..
골은 더 이상 터지지 않았고 정규시간은 종료되었다. 80분 안에 이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터라 아쉬움이 매우 컸지만, 애초에 승부차기까지 가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걸 떠올리면 2:2로 전후반 80분이 마무리된 것은 실컷 칭찬하고 넙죽 받아들여 마땅한 일. 양 팀 모두 극도의 부담감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 큰 문제겠지만..
진위의 승부차기가 무섭다. 걸리는 것 없이 힘차게 골문 구석구석을 가른다. 반면 우리는 조마조마했던 상황이 몇 차례. 각기 다섯 명씩 찼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다. 여섯 명, 일곱 명씩 찾는데도 승부는 나지 않았고.. 이 숨 막히는 순간, 진위의 여덟 번째 키커가 실축을 하고 만다. 이제 우리가 집어넣기만 하면 이 경기를 이기고 준결승에 진출한다.
지난 2월 광양에서 벌어진 백운기 전국고등학교축구대회 16강전. 상문고등학교는 프로 산하 풍생고등학교와 어렵지만 좋은 경기를 펼쳤다. 다 막았다 싶었는데 종료 3분 전 골을 허용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종료 직전 동점골을 터뜨리며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지고 왔다. 승부차기는 5:6 패배로 마무리됐는데 이날 아쉽게 실축했던 그 선수가 그날의 상처와 온갖 부담을 고스란히 가슴에 안고 다시 페널티 스폿에 선다.
영우는 생일이었다. 아마 평생 가장 큰 축하를 받은 생일이었을 것이다. 상문고등학교는 최강 평택진위를 꺾고 3년 연속 전국대회 4강에 오른다.
2년 전 상문고등학교와 벌인 결승전 후반에 뛰며 활약했던 진위 졸업생이 결국 고대에 입학해 특별히 내 사랑을 많이 받는 대학 후배가 되었다.
“상문고 축하드립니다.”
경기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내온 DM. 멋지다! 참 멋진 축구인의 세계! '고맙다! 더욱 사랑해!'
상문고 재학생 두 명이 군산에 내려왔다. 지갑에 있는 현찰을 다 꺼내 주었다.
상문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