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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Nov 23. 2020

메달이 없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남녀 핸드볼

대회 초반 8일 동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펜싱 경기장에 내내 나가 있었다. 핸드볼은 공중파 3사가 순차중계를 하기로 했고 다른 현장 중계 종목 배분 결과 펜싱, 양궁 등이 우리 회사 몫이 되었기에 여남은 해 꾸준히 펜싱 중계를 해온 나로서는 핸드볼을 잠시 뒤로 하고 펜싱 경기장인 엑셀에서 대회 기간의 대략 절반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8일 동안 잠자는 시간만 빼고 줄곧 펜싱만 보다 보니 모든 게 펜싱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격? 서로 마주 보고 쏴서 먼저 유효면 맞히면 1점?’

‘우리 선수가 공격을 했는데 점수를 안 주네? 농발라블이구나!’


‘그런데 핸드볼은 우리가 A조냐? B조냐? 대체 랭킹은 몇 위야?’


그토록 익숙해마지 않던 핸드볼이 그렇게 생소할 수가 없었다.


‘내가 돌보지 않아서였을까?’


지극한 교만이지만, 여하튼 남자 핸드볼은 사상 최초이자 최악의 성적인 B조 예선 5전 전패로 탈락! 하지만 여자팀은 2011 세계선수권대회 1~4위가 줄줄이 포함돼 있고 유럽팀 일색이었던 B조에서 2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8강 진출에 성공! 그러나 8강전 상대는 그토록 피하고 싶던 러시아!


우리의 재원이 형, 강재원 여자 대표팀 감독은 애초에 피하고 싶었던 팀을 결국 제대로 다 만나게 되었다. 애초 예상대로라면 십중팔구 우리를 이길 것만 같았던, 그래서 애써 피한다고 피했는데 결국은 8강에서 만나게 된 러시아를 상대로 우리는 24:23 짜릿한 한 점 차 승리를! 그리고 준결승에서는 2011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에 2008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의 구원이 있는 노르웨이를 B조 예선(27:27)에 이어 또 한 번 상대하기까지..


조효비, 권한나 등이 이번 대회를 통해 급성장 혹은 급부상하지 않았다면 여자팀 성적도 남자팀 성적만큼이나 참혹하지 않았을까? 주포 김온아의 초반 부상, 이어진 정유라의 부상 결장. 그리고 노르웨이를 상대로 한 준결승전에서는 잘 버텨 주던 심해인의 부상까지.. 선수가 모자라니 우선희 등 노장들의 출전시간이 너무 길어져 그만큼 경기의 질은 떨어지고, 그나마 잘 버텨 주던, 아니 최고의 활약을 해 주던 유은희가 체력 고갈로 골을 터뜨려 주지 못하니..


우리 여자 핸드볼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두 번 다 노르웨이를 이기지 못하고..


스페인을 상대로 한 3·4위전은 2차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2차 연장’이라는 말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을 통해 처음 들어 보았던 말이었고.. 이번엔 당시 감독이었던 임영철 감독이 해설위원으로 내 옆에 있고 당시 해설을 했던 강재원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저 밑에 있다. 2004년에는 2차 연장을 통해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 던지기까지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강재원 감독 얘기가, 선수를 바꿔 줘야 해서 뒤를 돌아보면 도무지 투입할 선수가 없더란다. 선수들의 발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 부상 당해 뛰지 못하는 김온아는 벌써 울고 있고.. 그야말로 고갈이었다. 누가 거기까지 가서 지고 싶었겠냐만 정말 도리가 없었다.


온통 눈물 가운데 우리 대표팀은 12년 만에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1984년 첫 본선 진출 이래 매번 본선에 나가 한 번도 4강에 오르지 못한 적이 없다는 기록만큼은 이어갈 수 있었지만..


미안하다. 미안하다. 여전히 한데볼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남자 핸드볼은 카타르 등의 급부상 가운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부터 아시아 왕좌도 쉽게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2016년부터는 올림픽 본선진출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자 핸드볼은 2016년 리우 올림픽 본선에서 상상 밖의 저조한 성적으로 조별 예선 탈락의 큰 충격과 함께 그야말로 바닥을 쳤고..


그러나 ‘대한민국 핸드볼이 대한민국’이라는 변함없는 신념으로 끝까지 응원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2021년에 치러진 2020년 도쿄 올림픽에도 역시 여자 팀만 본선에 진출했다. A조 조별예선에서 한일전 승리를 통해 1승을 기록했고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앙골라를 상대로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 일본과 앙골라 두 팀을 각기 승점과 득실차로 제치고 A조 4위로 8강에 올랐다. 8강전에서는 B조 1위 스웨덴을 만나 30:39로 패하고 대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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