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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Feb 01. 2021

아버지와 운동화

사십 넘은 아들이 자전거를 취미로 시작하고 보니 하도 좋아서 칠십 넘으신 아버지께 자전거를 하나 사 드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 드리면 타시겠냐?’며 한번 운을 띄워 보았다. 나중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거의 새 자전거를 타고 아버지 댁에 갔더니 ‘이 자전거를 내게 준다는 거냐?’며 엄청난 반색을.. 하지만 ‘그건 아니고 지금 새 걸 하나 사 드릴 테니 가까운 데 가시자’고 했더니 새 자전거를 살 것까지는 없고 그냥 운동화나 괜찮은 것 한 켤레를 사 달라고 하신다. 


이후 나는 운동화를 기억하기보다 자전거를 잊는 쪽으로.. 그런데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뵐 때마다 ‘왜 운동화를 안 사다 주느냐?’며 채근을.. ‘자전거보다 훨씬 쌀 텐데..’ 


내 발이 280mm인지라 내가 신다 만 신발을 버리지 않고 신으셨던 아버지 발은 대략 275mm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작정하고 새 걸 사 드린다고 하니 270mm가 좋다고 하신다. ‘작은 발에 아깝다며 헌 걸, 또 큰 걸 억지로 신으셨구나!’ 아버지 타시던 스케이트를 내가 지금 타기도 하니 호환에 아주 큰 무리가 있던 건 아니었겠다 싶기도 하지만.. 


생신을, 또 명절을 맞아 나름 고르고 또 골랐다. 몰래 사서 깜짝 선물로 펼쳐 놓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모처럼 사 드리는 운동화가 당신 마음에 꼭 들고 발에도 딱 맞았으면 하는 생각에 전화 몇 통을 주고받으며 적당하다 싶은 걸로 골라 겨우 한 켤레를 샀다. 원하시는 것보다 색이 좀 밝지 않나 싶어서 조금은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매우 흡족해하셨다. 


다른 집 아들들은 비싸고 좋은 것도 많이 해 드린다는데 나는 이제 기껏 운동화 한 켤레를 해 드리는 게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일이다. 혼자 생각에 그래도 기특하기도 하고 또 한편 몹시 민망하며 슬프기도 한 것이.. 


어머니 말씀이 많이 아껴 신으셨단다. 과연 그랬다. 선물을 받으시고 한 달도 채 안 돼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그 운동화를 과연 대여섯 번이라도 신고 집 밖에 나가셨을까? 성실하신 분이셨고 운동을 좀처럼 쉬지 않으셨으니 신고 나가실 일은 많았겠으나, 모처럼 아들이 선물한 운동화라고 아끼고 또 아껴서 신으셨던 것.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 댁 현관에는 사람이 신었던 흔적은 있으나 거의 새것인 운동화가 한 켤레. ‘좀 더 신고 가시지!’ 


현관에 신발이 아직 그대로 있는 게 참 감사한 일이다. 아버지 앞에서 유일하게 내 면목을 세워 주는 것이랄까.. 그나마 아무것도 못 받고 가시면 아들이 막심한 불효의 무거운 굴레를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을 테니 애써 운동화 한 켤레를 사달라 조르시고 또 받으시고는 그렇게 기뻐하셨는지도.. 


쇼핑몰 평범한 스포츠 의류매장을 심상치 않게 지나다니며 뜨거운 눈시울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이 있음을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자전거도 그때 그냥 두고 왔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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