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돈 Sep 29. 2020

What is Your Name?

내 이름을 영어로 표기하면 'Seungdon Choi'다. 여권에는 한때 'Seung Don Choi'라고 돼 있었다. 'Seung-don Choi' 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가 하면, 되도록 성 먼저 쓰고 쉼표 한 뒤에 이름을 쓰라는 얘기도 들린다. 여하튼 우리끼리는 별 문제가 없는데, 사람도 그렇지만, 이름도 국경을 넘기가 참 힘들다.
 
어떻게 써도 만족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사람 이름의 영문 표기는 외국 사람들이 각기 나름의 방법으로 읽을 때 문제가 더욱 커진다. 나의 경우 외국 사람들이 내 이름을 정확히 읽는 경우는 지금까지 전혀 본 적이 없다. ‘초이’ 아닌 ‘최’로 불리는 것은 애초에 포기한 일이고, ‘승돈’이란 이름이나마 제대로 불렸으면 좋겠지만, 'Seung'란 표기는 절대로 ‘승’으로 발음되지 않는다. 심한 경우 ‘조생돈’이라 불리기까지… ‘혹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일찍 태어난 돼지?’
 
애초 (미국이나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서울이 'Seoul'이라 표기된 것은, 불어에 없는 모음 ‘ㅓ’의 표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세(Se)’+‘울(oul, 불어에서는 'ou'가 ‘우’로 발음됨)’이라 적은 것인데, 이후 로마자 표기법을 정하면서 ‘Se+oul'을 ‘Seo+ul’로 잘못 이해하고 ‘ㅓ’는 'eo'로 ‘ㅡ’는 'eu'로 적게 한 것이 결국 이러한 문제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ㅓ’나 ‘ㅡ’ 표기의 딱 떨어지는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 한 때 ‘ǒ’와 ‘ǔ’로 표기하기로 한 적이 있으나 이 두 자는 지금도 컴퓨터로 문서 작성을 할 때 입력하기 어려운 글자이고, 편의상  'o‘와 ‘u’ 위의 특수기호를 생략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만약 생략하게 되면 ‘ㅓ’와 ‘ㅡ’ 발음은 더욱 의식되지 않을 공산이 커진다.
 
결국 홍콩이나 대만 사람들이 흔히 하듯 영어 이름을 써 볼까 하는 유혹이 있어서 돌림자를 약간 바꿔 ‘Donny’라고 소개를 해 봤더니 참 쉽고 좋다며 외국 사람들이 열광을 한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내가 감당을 못하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니’란 이름은 점잖은 성인 남성의 이름으로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애완견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고…
 
영국 런던에서 M4라는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제법 가면 'Swindon'이란 지역이 나오는데, 이곳의 이름이 영어권 고유명사 가운데 그나마 내 이름과 가장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내 영문 이름을 'Swindon Choi'로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생전 발 한 번 들여놓아 본 적이 없는, 생소한 동네 이름을 난데없이 내 이름으로 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여 이마저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의 첨병 구실을 하고 있는 영어의 영향으로 영어권 인명은 어디서든 별 억울함 없이 잘 읽히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밖의 경우엔 참 애로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스포츠 중계방송을 주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와 같은 문제는 참으로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이를테면 대회 때마다 이름이 바뀌는 포르투갈 혹은 네덜란드 선수와 같은 경우…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 포르투갈의 ‘주앙 핀투(Joao Pinto)’라는 선수는 ‘후앙 핀토’로 줄기차게 소개된 바 있다. 스페인어식으로 하면 인접국인 포르투갈 인명은 쉽게 해결될 줄 알았던 것이다.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가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에 비해 훨씬 가까워 보이기는 하나, 발음 법칙엔 무시해선 안 될 차이가 있었던 것. 우리나라의 세 번째 경기 상대이기도 했던 포르투갈의 주앙 핀투는 마침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기도 하며 우리의 뇌리에 더욱 분명하게 그 이름을 남겼다. 더 이상 ‘후앙 핀토’가 아닌 ‘주앙 핀투’로…
 
4년 뒤였던 2006년 독일 월드컵 나의 첫 중계는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네덜란드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경기였다. 다른 프로그램 촬영 때문에 쾰른에 있다가 라이프치히로 이동해 중계를 하는데 새롭게 작성된 선수 명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평소 하던 대로 선수 이름을 부르는데, '아니 ‘반 봄멜’이 아니라 ‘판 보멀’이라고? 정말?' 아무리 원어에 가깝게 해야 한다지만, 도대체 원어에 가깝게 한다는 건 과연 어느 정도가 가당한 걸까? 혹 누군가의 지나친 아는 척이 쓸데없이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였을까? 2006년의 ‘판 보멀’은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반 봄멜’로 슬그머니 이름을 다시 바꾸게 된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핀센트 판 호흐'의 '해바라기'를 새로이 기억해야 했을지 모른다.
 
여하튼 이름 얘기를 하자면 정말 끝이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사우디아라비아 선수 23명 가운데는 ‘알도사리’만 4명이었다. (한국 선수 23명 가운데는 'Lee'와 'Choi'가 각기 5명씩!) 또 요즘 사우디아라비아 선수 가운데 주목해야 할 선수로는 ‘알 하우사위’라는 선수가 있는데, 유니폼에 적힌 이름은 항상 ‘말렉’이어서 자료를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비슷한 문제로, 중동 사람의 긴 이름이, 이른바 ‘full name'으로 일일이 다 쓰여 있으면 도대체 이 가운데 뭘 골라 읽어 줘야 할지도 도무지 모르겠고…
 
‘Jiang Qing’으로 표기되는 마오쩌둥 부인의 이름을 ‘장킹’이 아니라 ‘장칭’이라 읽을 줄 아는 정도의 식견이 내게 있기는 하다. 브라질, 포르투갈 사람들이 ‘Ronaldo’를 정말 ‘호나우두’로 읽는지 직접 물어보고 들어서 확인해 보기까지 한 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어렵기만 한 건 외국의 고유명사 표기다. 얼마나 많은 나라의 말을 연구해야 하고, 또 어느 정도까지 파고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적당히 하자’는 얘기는 어떤 경우에도 좋은 결론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늘 우리의 결론은 여러 현실적 한계를 직시하는 가운데 융통성을 갖고 적절한 기준을 제시하며 결국은 ‘지혜롭게 하는 것’일 것이다. 최선을 다하되, 어차피 ‘최승돈’은 'Seungdon Choi'일 수밖에 없기도 하며, 또 동시에 결코 그럴 수 없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보 '말과 글' 제117호 (2008년 겨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