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느헤미야 5:1~5)
먹고살기 힘든 백성들이 지도자 느헤미야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탄원한다. 백성들의 어려움은 고리로 인한 채무로 전답을 빼앗기고 가족을 노예로 팔아야 할 정도에 이르기까지..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레위기 25:23)
율법은 기본적으로 토지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땅은 하나님의 것으로 그의 뜻 가운데 적절히 분배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 백성답게 은혜롭고 조화롭게 살 것을 당부하신다. 다분히 토지공개념적이랄까..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레위기 25:25)
혹 형편이 어려워져 팔 수밖에 없게 되더라도 가까운 사람이 속히 되사올 것을 명하셨고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레위기 25:28)
형편이 전혀 나아지지 않아도 일정한 때가 되면 아무 대가 없이 돌려받을 수 있게 한 것이 하나님의 법.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레위기 25:35~37)
심지어 이자를 요구하는 것도 율법에 위배된다. 사람은 서로 북돋우며 함께 어울려 잘 사는 동반자여야지, 조금이라도 나의 부유함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지..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느헤미야 5:6~8)
내가 놀란 것은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나라의 멸망과 70년 포로생활의 와중에 각기 과도한 부분도 없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당시 흔한 세상 상식에 기반해 나름 합리적으로 부를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그들’. 그런데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느헤미야 5:9~11)
오늘날 혹시 존경받는 지도자가 있어서 재벌 같은 사람들에게 혹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느헤미야 5:12)
빈부의 격차를 없애고 인간의 존엄성(?)을 두루 바로 세우기 위해 각기 마땅히 내놓아야 할 것을 내놓자고 하면, 종북 운운하고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며 난리법석을 피우는 게 오늘날 정상 아닌 정상이 아닐까? 그런데 다른 아무 말 없이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흔히 우리가 주인공인 양 행세하며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좀 우습게 알곤 한다. 느헤미야 5장 전반부를 읽으면서 우리는 느헤미야에 열광하며 느헤미야와 함께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곤 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 생각해 보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다. 비록 동포의 등골을 뽑아 먹고 살기는 했으나, 일단 말씀에 기초해 진리가 선포되면 다른 말 없이 그 말씀을 듣고 따랐다는 것.
나라의 멸망과 오랜 포로생활 뒤에도 예루살렘이 재건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그들 가운데 말씀의 권위와 기준이 두루 공유돼 확고히 서 있었기 때문. 말씀이 살아있었고 그 말씀이 백성들의 순종 가운데 힘 있게 역사했기 때문이다. 말씀은 오늘도 끊임없이 나에게 선포되고 있다.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