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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Mar 29. 2021

레위기를 알아야 하나님 하시는 일을 제대로 안다

레위기는 율법 중 율법으로 대개 재미없고 딱딱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인기도 없다. 숱한 사람들이 연초에 성경 읽기를 시작했다가 창세기, 출애굽기 바로 다음에 등장하는 레위기를 핑계 삼아 조기에 그만두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제사를 지금 드리라는 겁니까? 요즘 교회에서도 이런 거 안 하잖아요?”


제사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이 모든 제사의 이유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온전히 또 넘치게 감당해 주셨기 때문에 오늘날 레위기의 제사 규범을 일일이 기억하고 그 모양을 재연하는 것은 조금도 필요하지 않은 일이다. 다만 예수께서 감당하셨다는 그 모든 제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되씹어 보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이 아닐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감당하신 여러 일은 아무 맥락 없이 그냥 막 되는대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요즘 뭘 조금만 잘하면 순식간에 ‘(~)신’이라고 불리게 되기도 하는데,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알고 보면 뼈대 있는 집안의 준수한 청년이 상당기간 범접불가 높은 수준의 똑똑한 소리를 줄곧 해대고 끊임없이 놀라운 기적을 마구 일으키다 보니 어느 순간 뜬금없이 신이라 불리게 되고 어영부영 메시아라 일컬음을 받게 된 게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무법천지에 '그래도 이렇게 살아야 하고 또 이렇게 살면 된다'며 삶의 기준이 되는 율법을 일찍이 제시해 주셨다. 하지만 애초부터 예외 없이 타락했던 인류는 그 누구도 이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없었다. 꾸준히 발생하는 하자를 그나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율법 가운데 제시해 주셨는데 그것이 제사다.


제사는 여러모로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죗값을 물리적으로 표출해 주는 등의 효과가 있었지만, 제사드리는 사람과 제물의 부실함으로 인해 기껏 해야 상징적 의미를 가질 뿐, 파괴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는 일은 불가능했다. 상식적으로 따져도 짐승이 사람을 대속할 수 없고 죄인이 죄인을 대속할 수 없을 터인데, 유일하게 죄 없는 사람, 바로 그분이 친히 제물이 되어 주셔서 현실 제사의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고 결국 인류의 원초적인 문제, 죄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 주셨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 사역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에 오셔서 모진 고생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하여튼 연민을 느끼고 감사하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친히 감당하신 제사의 의미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일이 신앙의 핵심에 접근하는 더욱 바람직한 자세요 방법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어느 곳보다 레위기를 열심히 읽어야 할 것이고..


직접 제사를 드릴 건 아니니까 구체적 절차와 방법은 굳이 외울 정도로 집중해 읽을 필요가 없겠다. 이런 복잡한 일을 오늘날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일은 잊지 말고.. 중요한 건 의미다. 유대교에 속한 유태인의 경우랄까? 구약에, 특히 제사에 정통한 사람이 은혜받아 예수를 믿게 되면 훨씬 더 감격할 것만 같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누리게 된 이 숱한 은혜가 과거 제사를 통해서는 과연 어떻게 표출됐는지 자료화면 마냥 매우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떠올릴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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