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생애 첫 파업에 참여한 뒤 대여섯 개나 되던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하게 되었다. 이후 두 세기에 걸쳐 20년 세월, 대략 같은 추세 속에 산다.
언젠가는 밤새 숙직하고 집에 돌아와 겨우 좀 쉬고 있는데 평소 한 마디 얘기도 나누지 않으며 살던 TV 프로그램 배당 책임자가 느닷없이 전화를 한다. 정규 프로그램에 큰 MC로 제대로 배당된 것도 아니고, 부장 통해 약식으로 섭외돼, 특집 프로그램 아주 짧은 부분에 제대로 된 MC라기보다 MC 역할로 잠깐 나온 걸 우연히 TV로 보더니 깜짝 놀라 즉시 경위를 묻겠다면서 씩씩거리며 연락을 해온 것. 결국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은 이 일을 통해 난데없이 들통나 버린 것은 이 자의 머릿속엔 '얘는 절대로 TV에 나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만 가득하다는 사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도 아니지만, 참으로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었고..
가끔 제작팀에서 연락이 오면 '우리 사무실 담당자한테 얘기하세요. 그런데 아마 하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라 얘기한다. 가끔 배당이 되면 '오죽 변변치 않은 일이면 날 시킬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테네 올림픽 핸드볼 중계방송'도, '날아라 슛돌이'도 나중에 그렇게 잘 될 줄 알았으면 아마 줄 서 있는 다른 사람 시켰지 날 시키지 않았을 거라 생각을 하기도 한다. 혹 '일정하게 성적은 나오지만 주변부의 비인기 종목', 또 '철부지 어린아이들 공 차는 데나 쫓아다니는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지..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렇게, 또 이렇게.. 이 한 세월, 사람은 기를 쓰고 나를 돕지 않지만, 잊을만하면 한 번씩 도드라진 일을 하게 해 주셔서 적절히 자존감을 유지시켜 주신,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 파업을 위해 내려놓을 프로그램도, 보직도 딱히 없이 이 한 세월 귀한 소신 갖고 살게 하심 감사!
나 태어난 이 강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