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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Sep 15. 2020

중국어와의 특별한 인연

중국어를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졸업을 앞두고 내용과 상관없이 두어 학점이 꼭 필요했던 차에, 마침 베이징에서 한 달만 대충 지내면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던 것일 뿐. 수업을 열심히 들을 생각은 없었고 목표는 D학점이었다.
 
“@#$%^&*()_+(*&^%)(*&^%#$%#$%(*%^%#@..”
 
결코 높게 평가할 수 없는 행색의, 웬 중국 아주머니가 강의실에 들어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를 연신 해댄다. 졸업을 앞둔 터라 최고 학번이었던 나는 후배들에게
 
“가서 안 산다고 잘 말씀드려라.”
 
그러나 중국어를 못하기는 후배들도 마찬가지인 생초급반. 옥신각신 실랑이 끝에 40분 만에 겨우 알게 된 사실은 그분이 선생님이었다는 것.
 
애초엔 첫 수업에나 얼굴을 비치고 내내 놀러 다닐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매일 오전 네 시간 수업을 꼬박꼬박 빠져가며 애써 다닐 곳도 딱히 없었고, 또 중요한 건 말이 통해야 어디 놀러라도 다닐 수 있겠더라는 것!
 
초급이 좋은 건 그날 배운 표현을 그날 그리고 내내 기필코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잘 놀기 위해서라도 수업을 듣는 게 백번 남는 장사였다. 40 분 동안 선생님도 못 알아본 주제에 수업은 제대로 받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더욱 큰 효과가 있었다.
 
외국어 교수법 중 최초의 교수법다운 교수법이라 불리는 직접교수법(Direct Method)은 세계적인 어학원 벌리츠에서 비롯돼 벌리츠 교수법(Berlitz Method)라고도 불리는데, 어느 날 본의 아니게 불어 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불어 수업을 맡겼더니 학생들이 의외로 불어를 더 잘 배우더라는, 옛날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은 듯한 이야기.
 
한국 사람들에게는 중국어 배우기에 유리한 점이 의외로 매우 많다.
 
“멍무산치엔.”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께서 난데없이 한마디 하신다.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우린 사실상 바보니까.. 선생님께서 칠판에 글씨를 쓰기 시작하신다.
 
“孟母三迁(맹모삼천).”
 
한국에서 온 아이들은 거의 다 고개를 끄덕인다. 벨기에에서 온 아이만 여전히 바보다.
 
선생님께서 나 보고 벨기에 아이에게 영어로 설명해 줄 것을 부탁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순식간에 이해한 얘기가 벨기에 아이에게는 한두 가지 설명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왜냐고? 한번 해 보라. 직역해서 ‘Mencius’ mother moved 3 times.’라 한마디만 하면 되는지.. 서양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반문할 것이다!
 
“So what?”
 
한국인은 중국어의 문화적 배경이 되는 지식이 풍부하고,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음으로 인해 중국어 조어법에 알게 모르게 익숙해져 있다.
 
“我是韩国人.”
 
중국어로 읽지는 못해도 대충 이 문장의 뜻은 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아시한국인’인데 중국 사람들이 우리처럼 읽지를 못해서 자기들끼리 ‘워스한구어런’이라 읽는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냥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말에다 자기들끼리 쓰기 좋아하는 글자 몇 자 더 기억해 주고 자기들끼리 읽는 방식을 너그럽게 배워 준다고 생각하면 기분도 괜찮고 중국어 배우는 일이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한 달이 지났고 환송연이 벌어졌다. 나는 초급반인 C반 대표로 인사를 했다.
 
“C班是聪明班. (C반은 총명한(congming) 반입니다.)”
“哈哈! (하하!)”
“B班是不聪明班. (B반은 총명하지 않은(bucongming) 반입니다.)"
“哈哈哈! (하하하!)”
“A班是.. 哎呀! 怎么办? (A반은.. ‘아이고(aiya)! 이걸 어떻게 해(zenmeban)?’입니다.)”
“哈哈哈哈! (하하하하!)”
 
일자무식을 한 달 가르쳐 놓았더니 중국어로 농담을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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