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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Sep 15. 2020

축구를 좋아하자?

Football is Your Identity

축구를 좋아하자? '사과를 좋아하자' 혹은 '저 여자를 좋아하자'는 말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면, '축구를 좋아하자'는 말도 확실히 이상한 게 맞을 것이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어느 스포츠신문사가 펼쳤던 '1년에 축구장 두 번 가기 캠페인' 같은 일은 쉬 잊혀지지 않는다.
 
'축구는 워낙 재미있는 스포츠니 일단 한 번만 와 보면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만약 두 번씩이나 온다면 모두 완전한 축구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축구에 대한 신앙고백으로는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축구 일반'의 매력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역사성과 재미, 그리고 이에 따른 전 지구적 인기는 실로 놀랍기 짝이 없고, 이러한 사실에 깜짝 놀라 줄 외계인이 딱히 우리 앞에 보이지 않는 게 문제일 뿐, 축구는 온 인류가 긍지를 가져 마땅한 초대형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실 축구엔 객관적으로 재미없는 경기가 많다. 애써 시간 내서 왔다가 욕을 하고 갈 수도 있다. 작정하고 다시는 축구장에 오지 않을 확률이 높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경기는 재미있던데..'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바르셀로나 사람이 아니다. 코스프레를 할 수는 있겠지만..
 
바르셀로나는커녕 프로팀도 아니고 정말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심지어 애들 경기지만, 정말 재미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우리 팀이 경기할 때다. 예외 없이 100% 재미있다. 난 우리 아들이 만 6세 때 출전한 대회를 보다가 극도의 감정 기복과 요동 탓에 심장마비의 위협을 느낀 적도 있다.
 
역시 '정체성'이 답이다. '우리 팀'이 있어야 축구가 재미있어진다. 그럼 어떤 팀을? 묻고 찾아야 하는 게 답답한 현실이다. 가족을 선택할 수 없듯 좋아하는 팀은 고르는 게 아닌 것을.. 부산에서 태어난 아이가 롯데 말고 다른 팀을 떠올릴 자유가 있을까? 야구 얘기지만..
 
자유는 원래 좋은 것. 그런데.. 또 야구 얘기지만, 올 시즌 최악의 성적을 거둔 '한화 팬들이 참 존경스럽다'는 얘기를 올 한 해 무척 많이 들었다. 좋아하는 팀을 선택할 자유가 올 시즌엔 누구보다 이들에게 절실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자유를 누리기보다 결국은 정체성을 지켜 나간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
 
잘 이기는 팀을 찾는 것은 스포츠에 돈을 거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진정한 스포츠팬은 숙명으로 엮여야 한다. 선수와 팀이 있고 규칙에 따라 경기가 진행된다고 해서 축구가 다 되는 게 아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팬들의 인생, 또 운명과 화학적으로 결합하지 않으면 우리가 꿈꾸는 축구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팀은 고르는 게 아니다. 그냥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체성 같은 요인을 제대로 품으면 스포츠가 얼마나 다채롭고 또 풍성할 것인가! 스포츠는 없지 않아 있거나 여하튼 대충 하고 마는 게 아니다. 예배처럼 진지하고 파업처럼 치열한, 내 삶의 표현이며, 목숨 걸고 사는 우리 고귀한 인생의, 헐떡이며 펄떡이는 역사다. 흥행? 성공? 단 한 번이라도 이 관점, 정체성에 충실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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