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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Sep 24. 2020

나는 강릉사람이다

Baseball is Your Identity

나는 강릉사람이다. 단지 강릉 최 씨일 뿐만 아니라 아예 태어나기를 강릉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뒤 1년 갓 지나 서울로 이사 와서 지금껏 서울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강릉에서 태어난 강릉사람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던 것 같은데, 어느 날 강릉에서,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항렬이 낮은 손자님 둘(?)이 우리집에 와서 하룻밤을 묵고 갔다. 다음날 있을 강릉고등학교 야구 응원을 왔다는 것이었다. 난 지금까지 이게 대략 4강 진출쯤은 되는 일 아니었나 생각을 해왔는데, 막상 확인해 보니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동안 강고 야구부의 최고 성적은 전국대회 16강 두 번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창단 첫해였던 1975년에는, 1990년대 말에 내가 매우 좋아했던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와 봉황대기 1회전에서 맞붙어 0:11로 졌고, 이듬해였던 1976년에는 나의 모교인 상문고에 0:10으로 크게 졌던 게 전국대회 기록의 전부였던 강릉고 야구부. 이후 전국대회에서 사상 첫승을 기록한 것은 바로 1977년 봉황대기. 1회전은 운 좋게 부전승, 그리고 2회전에서 만난 나의 모교 상문고등학교를 상대로 10:6 승리를 거둔 게 강고 야구부의 사상 첫 승리요 그해 유일한 승리였다. 강릉 살던 친척들은 혹 사상 첫 승리에 그렇게 흥분해서 (기껏?) 16강전을 응원하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 서울에 왔던 것일까? 나이 차이를 감안해 다시 생각해 보건대 그때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러나 다른 때라고 상경 응원을 작정해 마땅했을 때는 딱히 없었던 듯한데..


강릉농공고(현 강릉중앙고)와 강릉상고(현 강릉제일고)의 축구 정기전으로 워낙 유명하고 시민들이 온통 ‘뽈으’ 차는 데만 관심이 있지, 야구에는 ‘마카’ 하나도 관심이 없는 동네에서 ‘그 명문 강릉고가 ‘왜서’ 계속 야구를 한다 하나?’ 궁금했던 그 오랜 세월.


1987년 청룡기 4강에 한 번 진출을 했고, 그 뒤로 또 한참 지나 2007년 청룡기에서 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해 결승전을 치르던 날, 나도 나름 강릉사람으로서 애써 동대문운동장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1987년 청룡기 준결승 때나 2007년 결승 때나 상대팀은,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경남고. 결국 0:5 완패였는데, 결승전에서 지는 팀이 그렇게 아쉬움 없이 만족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지는 것은 처음 보았달까?


내가  모르고 있던 중에, 우리 KBS 아나운서들과 사실상 제휴관계였던(아나운서들이 일찍이 덕수고에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민병헌 군(두산/롯데)으로부터 외야 수비 지도를 받았다든지..) 덕수고 야구부  감독 최재호 선생께서 강릉고에 부임을 했고, 강고는 갑자기 야구 명문으로 대도약을 했다. 작년에는 전국대회 준우승만  .


사상 첫 우승은 지난 황금사자기 대회 때 꼭 할 줄 알았다. 결승전 상대는 창단 17년, 거의 무명에 가까운 김해고였고, 여러 면에서 강릉고가 유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에이스 김진욱이 투구수 한도를 가득 채우고 물러난 이후 마지막 상황을 지켜내지 못해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고 만 강릉고. 창단 후 첫 우승은 오히려 김해고의 몫이 되었고..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많이 내린 날, 강릉고등학교는 제54회 대통령배전국고교야구대회를 통해 창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나는 강릉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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