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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Nov 20. 2020

짜장면 먹으러 간다

‘정작 중국에 가면 짜장면이 없다’는 얘기를 어릴 때 많이 들었다. '동네 중국집 말고 고급 중화요릿집이라면 짜장면이 없는 게 맞다'는 얘기도.. 그래서 1980년대 중반 타이완, 1990년대 초 중국에 처음 가서는 짜장면을 아예 찾지도 않았다. 물론 뭐든지 마음껏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중국어 실력도 아니었지만..


대학 졸업 직전 한 달 동안 베이징에서 연수를 할 일이 있었는데 어디서 ‘한국사람들이 짜장면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학교에서는 나름 애써 상상한 방법으로 1주일에 한 번 가량 점심시간에 짜장면을 만들어 주곤 했다. 그런데 모양만 비슷한 것이 너무 짜고 맛이 없어서 정작 짜장면이 나오는 날엔 한국 학생들이 되도록 학교 밖에 나가 밥을 사 먹곤 하였다는..


다른 나라에 가도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는 중국음식점이 아니라 한식집을 찾는 게 답이다. 대륙마다, 나라마다 한국에서 먹던 짜장면 맛을 그대로 구현해 낸다는 유명한 식당이 드물게 있어서 교민이나 유학생들이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와서는 짜장면 한 그릇을 후닥닥 먹고 가곤.. 과연 우리의 음식 ‘짜장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였던 것 같다. 번화가 왕푸징의 먹거리 장터에서 ‘炸酱面’이라는 표기를 처음 보게 되었다. '무슨 장이든 장을 볶아 면 위에 얹기만 하면 그게 바로 작장면(자쟝미엔, 짜장면)이 되겠구나! 그 넓고 유구한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를 가진 나라 중국에서 원래 짜장면이란 게 어쨌든 있었다고 한다면 결국 있다고 보는 게 맞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호기심에 먹어 보니 장을 볶아 얹었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기대만큼 우리 짜장면과 비슷하지는 않더라는..


2011년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한창일 때는 온 국민을 조금은 난데없는 기쁨으로 들썩이게 한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국립국어원에서 오랫동안 고수해 오던 '자장면' 말고 '짜장면'도 복수 표준어 표기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이렇게까지 지대할 줄은 몰랐다. 짜장면에 대한 온 국민의 사랑도 이날 또 한 번 제대로 터졌고.. 출장 중이었던 나도 점심메뉴를 달리 고를 것이 없었다. '짜장면!'


여하튼 중화풍 우리 음식 짜장면은 김치만큼이나 다양한 얘깃거리 가운데 숱한 삶의 많은 추억을 담고 있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것이 작품이 되며 또 숱한 사람의 추억에 이르기까지..


'고향 부산에선 간짜장을 시키면, 잘게 다진 양파를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고기랑 기름을 적당히 넣고 달달 볶다 춘장과 양념을 넣고 한 번 더 볶아 예쁜 그릇에 담아서 냈다. 그리고 쫄깃한 면에 오이채랑 특제 계란 프라이를 얹어서 내곤 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간짜장!


서울에서 중식당을 하면서 한 번쯤 시도해 보리라 마음먹었다가 얼마 전부터 새 메뉴로 시도해 봤는데 하루 종일 부산식 간짜장만 팔린다. 오늘은 점심시간 중간에 sold out! 그렇다고 너무 많이 준비하지 않고 준비한 재료만큼만 판매하는 전략으로 승부를 걸어야겠다.'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이 새 메뉴를 소개하며 글을 올렸다. 나는 그 '부산식 간짜장'에 공깃밥을 추가해 비벼 먹기까지.. 그런데 부산 말고 다른 지역에서도 계란 프라이 얹은 짜장면 이야기를 해 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본격적으로 조사를 해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딱히 어느 한 지역의 특징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난 오늘도 맛있게 짜장면을 먹는다.




회사 본관 구내식당의 매주 금요일 점심 붙박이 메뉴는 짜장면이다. 세상에 더 맛있는 짜장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가성비는 그야말로 세계 최강이다. 매번 거의 빠짐없이 짜장면을 챙겨 먹는데, 금요일에 딴 데서 누가 다른 걸 사 주겠다고 하면 아무리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그리 내키지 않을 때가 많다. 금요일에 구내식당에서 짜장면을 먹고 퇴직하게 되면 정말 뭉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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