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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스 Dec 25. 2022

인생의 목표

아버지와의 대화기록

가장 존경하면서도 닮고 싶은 아버지와의 많은 깨달음을 주는, 조금은 신기한 대화의 기록. 


나: 아빠는 건축과에 왜 갔어?


아빠: 그냥.. 아빠는 공대 가고 싶은데 화학도 싫고 물리도 싫어서 건축과로 시험 봤는데 됐어. 


나: 아빠는 건축가로서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어? 교수가 되려고 따로 준비한 게 있다거나.


아빠: 아니~ 아빠는 그냥 건축과 나왔으니 건축가를 해야겠다~ 그러면서도 먹고는 살아야겠다~ 하다가 이렇게 된 거지. 


나: 아빠는 은퇴하면 뭘 하겠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거 있어? 이제 몇 년 지났는데, 생각했던 거 다 해봤어?


아빠: 아니 뭐 그냥 은퇴한 다음에 생각해본 거지~ 아빠가 좋아하는 거 한 두 개 해보다 보니까 재미있어서 하고, 또 재미없어지면 안 하고~ 하루는 놀고 하루는 먹고 하루는 자고 이렇게 살다 보면 또 무언가 해보고 싶어지고. 


나: 그렇다기엔 아빠는 마라톤도 뛰고 그림도 그리고 너무 열심히 사는 거 같은데~~


아빠: 그냥 하는 거야 그냥. 하려고 계획 세우고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또 하기 싫어지는데, 왜 은퇴해서까지 하기 싫은걸 해. 뭐 대단할걸 하려고~


나: 나는 그래도 아직 성공할 기회가 있고, 대단한 걸 해보고 싶기도 한데. 그러면 하루빨리 준비하고 계획도 세우고 목표도 차근차근 이뤄가면서 나아가야 할 것 같아. 근데 벌써부터 목표한걸 다 못 이루고 계획이 계속 바뀌어서 불안하고 풀이 죽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에 아빠는 정말 많은 걸 이룬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그냥 하다 보니까 이룰 수가 있는 거야? 그냥 그때 그때 열심히 하다 보면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걸 이루게 되는 거야?


아빠: 어차피 인생을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살아내는 사람은 없어. 그때 그때 주어진 걸 열심히 해내면서 그 안에서 길을 찾고 즐기면서 살아가면 되는 거야. 꼭 어딘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필요도 없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서 그걸 지키지 못하면 슬퍼할 필요도 없어. 물론 뭘 하고 싶은지, 하기 싫은지, 뭘 잘하는지를 계속 생각해볼 필요는 있지만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면서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거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이 즐기면 그걸로 된 거지. 


아빠도 그냥 시급 많이 준다고 해서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또 기회가 오니까 교수가 된 거고. 그래도 건축학과니까 건축사무소에서 일도 한 거고, 기회가 오니까 설계도 이것저것 한 거고. 하다 보니까 또 이 일이 나름 나쁘지 않은 거야. 물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걸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인생이 또 마음대로 안되는데 하고 싶은 걸 해보니까 내가 잘 못하는 사람이면 어떡해. 그래도 또 길을 틀어서 새롭게 도전해보고 하려면 한 가지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모르고 있다가 나이 들어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잖아.


나: 흠 그럼 나도 이번 기회에 진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까. 혹시 모르지 나 제대로 배우면 막 춤 엄청 잘 추는 거 아니야? 하다 보면 갑자기 유명해지고~~


아빠: 아아니... 너는 일단 그래도 학교를 졸업하려고 해 봐. 어휴,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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