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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스 Oct 20. 2022

출근하긴 했는데 출근 안 했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에서

회사와 계약한 지 1년 하고도 10개월. 회사 방문 약 10회. 


여름부터 출근을 하라고 연락이 왔다. 일주일 중 40프로는 오피스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룰이 생겼다. 1년 동안 함께 일한 팀원들을 직접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반가운 소식이었다. 팀원들과 점심도 먹고 함께 일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은 경험이리라. 


하지만 회사를 나가도 모든 일과 미팅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팀원들이 오피스에 출근하는 날은 없었기 때문에 미팅을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 특히 몇 명은 아예 이 근처에 거주하지 않아서 출근을 하지 않았다. 매 번 회사에 가면 한 두 명과 점심을 먹고 온라인으로 홀로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일은 원래부터 컴퓨터로 했고 아직도 모든 일을 온라인으로 하는데 굳이 교통비를 쓰고 옷을 갈아입고 불편한 신발을 신고 회사에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을 해도 집에서 일하는 것과 동일하고 에너지만 낭비하는 기분이었다. 


나만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출근을 하라고는 했지만 강요하거나 근무 수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직원들이 오피스에 오지 않았다. 나는 주 20시간을 일해서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하면 되었는데, 그마저도 잘 가지 않게 되었다. 


학교는 모두 오프라인으로 전환되었다. 물론 나는 더 이상 수업을 듣지 않아 일주일에 두 번, 많으면 세 번 정도 세미나를 듣거나 미팅을 하러 간다. 하지만 그마저도 너무나도 귀찮다. 2년 동안 침대 혹은 식탁에서 듣던 세미나를 듣기 위해 40분이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돌아보면 대학생 때 나는 평촌에서 신촌까지 약 1시간 30분 거리를 통학했다. 학교가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학교 행사를 가기도 했으며, 그저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까지 가기도 했다. 그렇게 멀리 가는데도 번거롭거나 귀찮다는 생각을 그다지 안 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도 있고, 학교 도서관이 워낙 집중이 잘 되니까. 하지만 지금은 집 앞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것에도 큰 의지가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로 집에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해보니,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출근을 '직접'하는 것과 집에서 하는 것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 실제로 출근과 출석을 하는 것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인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기 때문에, 밖에 나갔다 온 날은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이전보다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오프라인으로 회사나 학교에 가도 온라인 업무가 이어지기 때문에 에너지를 두 배로 쓰는 느낌도 든다. 


모두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에 놓여있는 지금은 좋기도 하지만 번거롭고 삶과 일의 경계가 더욱 허물어진 느낌이다. 퇴근 후의 일상이 퇴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업무시간이 아니더라도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으면 일을 게을리하는 느낌이 든다. 집에 있으면 일을 안 하는 것 같지만 막상 출근하면 집에서 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회의감이 든다. 


오늘도 나는 출근을 했지만 출근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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