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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Jan 06. 2022

멀리서 온 따뜻한 새해 카드

소중한 인연

세상의 모든 생경한 첫 경험은 서툴고 어렵지만

그중 나의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경험은 단연코 ‘첫 육아’였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변화가 아닌 나의 역할과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리는 그런 전환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보가 많고 간접 경험을 해봤다고 해도, 막상 현실 부모가 되면 툭하고 부서져 버릴 거 같은 작은 신생아 앞에서 과잉으로 긴장하게 된다.

그럼에도 모성애의 힘으로 어찌어찌 몸소 배워나가며 해낸다.

정신이 매일같이 고장 날 듯하지만 아이의 배냇 웃음 하나로 모든 것이 무장해제돼버리는 경험은 직접 해보기 전엔 상상조차 힘든 깊고 귀한 감정이다.


그럼에도 육아의 세계는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 대부분이 고된 노동으로 육체와 멘탈이 극단으로 지치는 경험이다.

그 어려운 첫 경험을 낯선 해외에서 했으니 평온한 환경에서도 늘 불안해했다.

한국에서 흔한 산후조리원도, 친구도 없어서 심란해하는 내게 남편의 소개로 소중한 인연이 생겼다.


임신 22주 즈음에 나와 임신 2개월 차이 나는 남편 동기의 아내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무작정 문자로 만나자고 들이댔다.

그렇게 우리는 임신, 육아에 많은 것을 서로 공감하고 나누고, 나에게는 크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돼주었다.


그녀는 나보다 더 일찍 미국에 정착하여 임신, 육아뿐 아니라 먼저 경험한 것들과 정보를 아낌없이 나눠주었고, 그 덕에 나의 타향살이는 비교적 수월하고 편안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 덕분에 블랙스버그가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아이폰 메모에는 그녀가 준 수두룩한 꿀팁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거의 매일 함께 걷던 산책로

아이 낮잠시간에는 함께 유모차를 끌고 산책로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면 누군가의 엄마, 아내가 아닌 온전한 ‘나’에 집중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더없이 자유롭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분명 내 인생의 잠시 쉬어가는 환기 시점이었는데도, 갈팡질팡 불안했던 나는 내면이 단단한 그녀와 깊은 대화를 나누며 많이 웃고 배우고, 숨통 같은 시간을 보냈다.

산책을 마치고 아이들이 낮잠에서 깨어날 때쯤이면 다시 주부 모드로 깨어나,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멀리서 지는 예쁜 노을을 지그시 바라보며

“덕분에 오늘 하루를 잘 보냈어요-“라며 인사를 건네곤 했다.




어젯밤에 지금은 시카고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서 소중한 새해 카드를 받았다.

멀리 있어서 통화나 문자로 주고받아도 되는데,

손으로 직접 쓴 몇 줄의 문장 속에는 따뜻한 진심과 진한 추억들이 버무려져 나에게 큰 위로와 힘을 준다.


코로나 시국으로 실제로 만나는 일은 힘들어졌지만, 언제 어디서라도 건강하고 잘 지냈으면 하며-

생애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 경험' 함께 나눈 그녀와 가끔생각나는 블랙스버그가 떠오르는 그런 밤이다.


낮잠에서 깨어난 내 새꾸의 2018년 in Blacks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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