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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Feb 25. 2022

내 아이의 졸업식

그리고 함께 성장한 엄마 이야기


남편을 따라 해외에 있을 때, 복직을 마음먹은 후 가장 큰 고민은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내 아이의 ‘어린이집’이었다.

때마침 우리 회사의 어린이집 추첨 기간이었는데 덜컥 당첨이 되어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내 아이와 복직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3년의 시간이 흘러 내 아이가 어린이집 졸업을 하게 됐다.

14개월 어린이집 OT & 51개월 졸업식 오늘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란 정말 좋은 조건이었지만, 웃지 못할 일들이 참 많았다.


대부분 약봉투와 함께 등원했던 첫 해, 폭우가 쏟아지는 퇴근길 차 안에서 3시간 갇혀 아이 기저귀와 카시트가 축축이 젖었던 일, 등원 거부가 심해서 원장님 원감님과 번갈아 면담했던 일, 눈 깜빡하는 사이에 벌어진 가슴 쓸어내린 사고들, 팬데믹 비상으로 망가진 일상.. 등등 수많은 에피소드들.


나중에는 눈으로 보인 상황들 위주로 기억에 남을 테니, ‘나’와 ‘엄마’ 사이에서 느끼고 감각한 것들을 세세하게 기록해보기로 한다.




일하는 엄마

‘일하는 엄마’가 되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익숙지 않은 초반에는 마치 여러 개의 공을 저글링 하며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 하는 느낌이다.

일터에 나가 있는 동안 아이에게 늘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지원자가 필요하고, ‘아이가 아직 어리다’라는 인식을 회사에도 늘 심어주며 양해를 구해야 한다.

같은 건물에 있어서 변수에 바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좋은 반면,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자주 오는 첫 해에는 늘 긴장하며 일을 해야 했다.


나의 근무시간에는 어린이집에서 내 아이와 놀아주며 식사와 간식, 낮잠까지 챙겨 주고, 퇴근 전까지는 나의 친정 엄마가 메워주시니 사실상 어린이집과 친정 엄마가 내 아이를 대부분 키워준 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늘 손이 부족한 느낌으로 힘들었던 이유는 나의 능력보다 더 많은걸 해야 한다고 느끼며 쉽게 지치고 짜증 나있었고, 그런 나의 감정에만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이다.

바쁘고 고단하게 느껴지는 하루하루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쉽게 감정에 저며 들곤 했다.


그렇게 근근이 버티던 때에 나에게 맥없이 무너져버린 사건이 있었다.

임신했을 때부터 종종 허리를 못 펴는 일이 있었는데 관리를 잘 못한 탓에 허리 디스크가 심각해진 것이다. 그때는 내 인생 중에 가장 큰 위기였고 나의 선택에 대한 의심과 큰 상실감에 빠졌었다.


상실감 속 구원
"만약 당신이 하는 일에 확신이 있고 옳은 일이라면 그 누가 뭐래도 틀린 일이 아니에요."
- 영화 '인턴'

“일이냐 가정이냐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난 엄마를 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어요. 일과 가정을 함께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고.”
- ‘오늘도 아이와 함께 출근합니다’


‘남편과 떨어지면서까지 나는 이 길을 선택해야 했을까?’

‘나에게 확신이라는 실체가 있기는 했었나?’

나의 근간을 괴롭히고 흔드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의 깊은 내면 속 나약함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이 들고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막상 선택한 길이 생각보다 험난하고, 육아와 일 중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저 꾸역꾸역 한다고만 느낄 때 자괴감이 밀려오고 자꾸만 포기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내 아이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해주고 싶고, 내 일이 나의 생활 중심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잘하고 싶은 마음 또한 지극히 정상이고, 모든 일은 그 ‘꾸역꾸역’ 해냄 속에서 가능성과 희망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워킹맘이 된 이후에는 완벽해 보이는 타인들의 삶 뒤에도 수없이 많은 고민과 아픔들이 있다는 걸 알아가며, 고스란히 공감이 되고 구원처럼 위로가 되었다.

나의 신체적 고통은 한없이 바닥으로 꺼져있던 내게 나의 삶 전체를 각성하고 나를 카메라 앵글로 보듯 돌아볼 계기가 되었다.


내 안의 정답

아무도 내게 다 하라고, 더 잘하라고 한 적이 없다.

모든 것은 나의 역량에 비해 무리하여 힘들어한 것이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줘도 아이는 잘 자란다.

늘 지쳐있어서 영혼 없이 아이와 놀아주는 것보다 한 시간이라도 알차게 놀아주는 엄마가 낫다.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가 보고, 의심보다 실행하는 쪽에 더 에너지를 쓰며 적어도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결정한 선택에 온몸을 실어 진심을 다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내 안의 정답일 것이다.

나에게 ‘엄마 ‘ 역할의 균형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결국 평소 바라보지 못했던 ‘  깊게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결국은, 귀한 시절
어린이집에서 보내준 졸업가 부르는 열매반 영상(내 아이는 센터^^)

첫 입소할 때에는 상상도 못 했던 지독한 코로나 시대가 되었다. 예정되어있던 부모 참석 졸업식은 바로 전날에 어린이집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잠정 취소되고 가까스로 부모 참석 없이 하루 미루어 졸업식을 하게 되었다.

전날 밤 자가진단 키트로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 확인 후 졸업식에 보냈는데, 이렇게라도 아이가 마지막으로 선생님과 친한 친구들에게 이별 인사를 나누고 첫 졸업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는 지난 며칠 동안 집에서 열심히 연습한 졸업가를 우렁차게 부르며 처음 경험하는 이별에 슬퍼했다가 새로운 시작에 들떠 있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달콤하고도 쓰라린 번잡한 마음과 동시에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심장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듯한 쓰라리고 아릿한 감정이 그 어느 때보다 귀하게 느껴지는 날들이다.


내 아이에게도 언젠가 방황하고 힘든 시기가 찾아오겠지-

그때쯤엔 무모하고도 용감한 엄마의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떠올려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밀도 높은 시간들이 결국은 삶의 해상도를 높여준 모멘텀이 되었다는 것도 천천히 들려줘야겠다.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사랑스러운 시아야,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진심으로 졸업 축하해

3년동안 너무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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