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트리밍 Mar 21. 2022

어느 모녀의 이야기

소중한 만큼의 거리



-어느 취업준비생 엄마의 일기-

여자는 현관문으로 시선을 한번 더 옮겼다. 도서관은 밤 12시에 닫으니 천천히 와도 벌써 도착해있을 시간인데, 오늘은 딸의 귀가가 늦어진다.

딸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긴 건 아닌지 염려스럽지만, 만약 그렇다면 묵직해진 마음을 걸음걸음마다 털어놓으며 들어오는 게 딸의 방식이니까 괜히 전화해서 그 흐름을 깨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 2년간, 딸은 부는 바람에 몸을 맡겨버린 갈대처럼 흔들리곤 했다.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종종  가던 길을 이탈해버리곤 했다. 하염없이 공부를 붙들고 있는  불안하다면서 그리 원하지도 않는 곳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엄마의 입장에서  마디 했다가 잔소리가 되고,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돌덩이만 얹게 될까  그동안 말을 아꼈다. 그런 딸에게 전할  있다면 어느 책에 쓰여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미네르바 부엉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아올라. 어떤 일이든 한참 진행 중일 때는 그게 맞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고, 마무리되는 시점에 돌아봐야 그 과정이 어땠는지 선명하게 보인다는 뜻이야.
그러니 어느 길이 맞을지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어떤 길을 가든 너의 선택으로 정한 것이라면 그게 곧 맞는 길일 테니 너무 겁먹지 않는 네가 되길 바란다.
모쪼록 오늘 딸의 방황이 길지 않았으면 하고,  나중에 보면 지금의 방황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있을 거라는 뜻이야. “



가끔은 어느 매체를 통해 보거나 듣는 타인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져 ‘쿵’ 하고 마음이 만져지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같은 시간대를 사는 한 여성의 '하루 틈' 이야기가 울림으로 다가왔다.

항상 지나고 나서야 얘기할 수 있는 거지만 우리는 엔딩을 섣불리 정하는 거 같다.

그렇지만 의미 없고 무책임해 보여서 꺼내기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라 해도, 한때 어려운 시기를 지나온 한 사람으로 너무 진실인 이야기를 안 할 수도, 또 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힘들어할 때는 원망받을 거 알면서도 가끔은 이야기하게 되는 것, 사람 냄새나는 삶은 비슷한 듯하다.

하고 싶고 해주고 싶은 말을 삼켰던 날, 해주더라도 가끔 잔소리처럼 나가게 돼서 서로에게 가시 돋친 상처로 남았던 날들.

내 아이를 키워보고서야 조금은 그 존재를 헤아릴 수 있을 것 같고, 앞으로 나의 딸에게 해주고 싶지만 수백 번 삼키며 지켜봐야 할 나를 상상하며 왠지 모르게 타인의 삶이 더욱 가슴 깊이 들린다.


소중한 존재에게 딱 소중한 만큼만 다가가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차마 그 지점에 있을 때에는 말 못 하지만 지나고 나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 쓸쓸하고 막막한 시간들이 있어야 결국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그리고 부모가 뒤에 서있을 때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부모가 뒤에서 지켜보며 지지해줄 수 있는 일 또한 결코 당연하지도 않기 때문에.

때로는 자신이 한없이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런 나약함을 소중한 존재에게 알려도 괜찮다. 때로는 그것이 보이는 것만 그대로 알려주는 것보다 속마음을 잘 전달하는 것도 상대에 대한 배려고, 성숙한 자세이다.

아이를 마음속 깊이 존중하고 지지한다면 적절한 타이밍에 토닥토닥해주기 위해, 딱 소중한 만큼 다가가기 위해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어른이 되길 노력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아이의 졸업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