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만큼의 거리
-어느 취업준비생 엄마의 일기-
여자는 현관문으로 시선을 한번 더 옮겼다. 도서관은 밤 12시에 닫으니 천천히 와도 벌써 도착해있을 시간인데, 오늘은 딸의 귀가가 늦어진다.
딸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긴 건 아닌지 염려스럽지만, 만약 그렇다면 묵직해진 마음을 걸음걸음마다 털어놓으며 들어오는 게 딸의 방식이니까 괜히 전화해서 그 흐름을 깨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 2년간, 딸은 부는 바람에 몸을 맡겨버린 갈대처럼 흔들리곤 했다.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종종 잘 가던 길을 이탈해버리곤 했다. 하염없이 공부를 붙들고 있는 게 불안하다면서 그리 원하지도 않는 곳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엄마의 입장에서 몇 마디 했다가 잔소리가 되고, 안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돌덩이만 얹게 될까 봐 그동안 말을 아꼈다. 그런 딸에게 전할 수 있다면 어느 책에 쓰여있다는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
미네르바 부엉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아올라. 어떤 일이든 한참 진행 중일 때는 그게 맞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고, 마무리되는 시점에 돌아봐야 그 과정이 어땠는지 선명하게 보인다는 뜻이야.
그러니 어느 길이 맞을지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어떤 길을 가든 너의 선택으로 정한 것이라면 그게 곧 맞는 길일 테니 너무 겁먹지 않는 네가 되길 바란다.
모쪼록 오늘 딸의 방황이 길지 않았으면 하고, 나중에 보면 지금의 방황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있을 거라는 뜻이야. “
가끔은 어느 매체를 통해 보거나 듣는 타인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져 ‘쿵’ 하고 마음이 만져지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같은 시간대를 사는 한 여성의 '하루 틈' 이야기가 울림으로 다가왔다.
항상 지나고 나서야 얘기할 수 있는 거지만 우리는 엔딩을 섣불리 정하는 거 같다.
그렇지만 의미 없고 무책임해 보여서 꺼내기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라 해도, 한때 어려운 시기를 지나온 한 사람으로 너무 진실인 이야기를 안 할 수도, 또 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힘들어할 때는 원망받을 거 알면서도 가끔은 이야기하게 되는 것, 사람 냄새나는 삶은 비슷한 듯하다.
하고 싶고 해주고 싶은 말을 삼켰던 날, 해주더라도 가끔 잔소리처럼 나가게 돼서 서로에게 가시 돋친 상처로 남았던 날들.
내 아이를 키워보고서야 조금은 그 존재를 헤아릴 수 있을 것 같고, 앞으로 나의 딸에게 해주고 싶지만 수백 번 삼키며 지켜봐야 할 나를 상상하며 왠지 모르게 타인의 삶이 더욱 가슴 깊이 들린다.
소중한 존재에게 딱 소중한 만큼만 다가가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차마 그 지점에 있을 때에는 말 못 하지만 지나고 나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 쓸쓸하고 막막한 시간들이 있어야 결국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그리고 부모가 뒤에 서있을 때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부모가 뒤에서 지켜보며 지지해줄 수 있는 일 또한 결코 당연하지도 않기 때문에.
때로는 자신이 한없이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런 나약함을 소중한 존재에게 알려도 괜찮다. 때로는 그것이 보이는 것만 그대로 알려주는 것보다 속마음을 잘 전달하는 것도 상대에 대한 배려고, 성숙한 자세이다.
아이를 마음속 깊이 존중하고 지지한다면 적절한 타이밍에 토닥토닥해주기 위해, 딱 소중한 만큼 다가가기 위해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어른이 되길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