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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Dec 16. 2021

‘Soul’을 보며 깨어난 어른 아이

바다에 온 어린 물고기

지난 주말, 내 아이와 보고 싶었던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을 봤다.

다섯 살 아이가 보기에는 무서운지(?) 아이는 몇 장면에서 울고, 나는 여러 장면에서 많이도 울컥울컥 했다.


주옥같은 장면과 대사가 너무도 많지만 마음속 어린아이를 깨웠던 이 장면에서 특히나 울림으로 다가왔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오랜 기간 꿈꿔온 인생의 목표를 마침내 재즈 클럽에 입성하고 그의 꿈의 뮤지션이었던 도로시아 윌리엄스와 함께 공연을 해내며 목표를 이룬다.

오랜 고생 끝에 인생 목표를 이룬 그였지만, 정작 조에게 남은 감정은 목표를 이뤘다는 성공의 기쁨보다 허탈함과 공허함이 더 컸다.

그렇게 원하던 꿈을 이뤘음에도 허탈해하는 조 가드너에게 도로시아 윌리엄스는 위로하듯 어느 물고기 이야기를 전한다.


“어린 물고기가 있었어, 그 어린 물고기는 어른 물고기에게 '전 바다라고 불리는 엄청난 것을 찾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어른 물고기는 '여기가 바다야'라고 답했다. 그러자 어린 물고기는 '여기는 물이에요.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요!'라고 답했다.”


이 부분에서는 뭔지 모를 쓰라림과 동시에 가슴에서 올라오는 울컥함을 느꼈다.

과녁을 향해 무작정 달리는 당근 달린 말처럼, 뒤돌아보지도 않고 마침내 무언가를 이루어냈을 때,

성취감과 동시에 허탈감이 꼬리표처럼 찾아온다.

성취에 취했을 때에는 마치 당장이라도 내 삶이 바뀌고 자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안다.


순간의 기쁨은 있더라도 막상 현실의 앞날은 뿌옇고 곧 뿌연 안개가 개면 더 높은 산이 보여 진이 빠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수록, 노력을 들일수록 빨리 지치고 허탈함의 무게는 더하다.

그런 허탈함을 수없이 겪어서도 또 무언가에서 이끌리듯 끊임없이 인정 욕구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불안정한 자아, 자존감 부족을 타인에게서 인정 욕구를 채우려 했기 때문인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무언가 하나만을 위해 달리는 일은 낭만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정말 오롯이 나를 위한 일인지,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일인지가 중요하단 걸 알게 된다.


그런데 이 경험을 통해 누구에게 향한 ‘시기 혹은 질투’라는 감정에서 만큼은 조금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시기 질투는 주로 누군가와의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데 그것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는 반면, 나를 초라하게 하고 일생을 걸쳐 괴롭히는 불쾌함의 근원이다.

적어도 멈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불완전함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고, 내가 직접 그 노력을 경험함으로써 타인의 표면적인 모습만 보는 게 아닌 그럴만한 이유와 배경(노력)이 있어서 성취했음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아도취에 빠져보기도 하고 한없이 비참한 감정에도 빠져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다양한 감정을 느껴봐야 비로소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나만의 안정된 적정 온도를 찾게 된다.


쓰고 나니 머쓱하기도 하다. 사실 영화 속 조 가드너의 열정만큼이나 뜨거운 불꽃을 품은 적이 있나 싶기는 하지만, 영화 속 인물과 비교하는 일은 참 어리석다 ㅎㅎ

목표에만 집중하고 달리기에는 우리 인생은 짧고 순간순간을 살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고 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순간순간을 즐기고 느끼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불꽃은 목적이 아니야, 인생을  준비가 되면 마지막 칸이 채워져.”
Your spark isn’t your purpose. That last box fills in when you are ready to come live.

어떻게 살진 모르죠-그래도 그건 알죠 모든 순간을 즐기며  거라는 
I a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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