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드로잉
우리는 변태 사이다
우리는 화우 사이/ 화끈한 사이 / 비밀스런 사이 / 이상한 사이다
작업은 누드김밥 사이 / 진지와 장난 사이 / 현실과 이상 사이다
누드는 이성과 감성 사이 / 예술과 외설 사이다
시선은 다리 사이 / 너와 나 사이다
생각은 진실과 거짓 사이다
너와 나는 그렇고 그런 사이다
우리는 변태 사이다.
'변태'(變態)란 무엇일까?
일부생물들이 유충(애벌레)에서 성충(곤충)이 되는 과정을 우리는 '변태'라고 한다. 나는 과학시간에 이것을 배웠지만, 내가 실제로 아는 것은 그저 변태의 사전적 정의가 전부이다.
곤충을 좋아하게 된 것은 주택살이를 시작하며 정원을 가꾸고부터 였다. 그에 반해, 나뭇잎에 붙은 애벌레들은 생김새가 징그럽다는 이유로 혐오했다. 어느 날, 호두나무잎에 붙은 애벌레가 너무 싫어 살충제를 뿌렸다. 다음 날 애벌레들은 모두 죽었으며, 나는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것들의 정체는 무엇이며, 왜 자꾸 생기는걸까?’ 몇 번의 검색을 통해 나는 그 애벌레가 무당벌레 유충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무당벌레와 내가 혐오하는 애벌레와의 사이에는 너무 큰 도약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둘을 동일한 개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변태의 과정은 신비롭다.
먼저 애벌레의 몸은 번데기 안에서 산산히 분해되어 액체상태가 된다. 그 후, 액체상태의 물질이 재구성 되어 극단적으로 전혀 다른 성체가 되어 번데기를 뚫고 나온다. 그 과정 어디에도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진화의 연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체되고 재구성 되어지는 과정에서 실로 엄청난 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번데기안에서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걸까? 변태를 거치는 과정에서의 유충과 성체를 과연 동일한 개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자연의 일반적인 법칙 중 하나라면 인간에게도 적용되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경험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으로 이어지다 결국은, 내 몸과 의식의 관계까지 생각이 확장된다. 그리고 이 생각들은 나의 작업 전반에 큰 영향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 처음의 질문을 다시 던지겠다. ‘변태’란 무엇일까?
나에게 '변태'란 도약이다. 내 드로잉 작업들은 ‘변태’의 과정이며, 우리가 가진 몸(껍데기)으로부터 변태하는 과정에서 의식을 깨우고, 내가 가능성을 가진 본질 그 자체라는 것을 인식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또한, 예술가에겐 창작의 과정도 ‘변태’와 다르지 않다. 기존의 것을 분해하고 해체시켜 전혀 다른 창작물을 만드는 행위 그 자체가 어찌보면 ‘변태’와 동일선상에 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변태를 꿈꾼다. 그러나 그건 절대 쉬운일은 아니다. 변태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하며,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킬 용기를 내어 껍데기를 과감히 뚫고 나와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작업들은 변태의 과정이기도 하며, 변태를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2023년 4월 누드크로키 전시 / 작가노트 중]
변태(變態) : 1. 탈바꿈. 즉,변하여 달라진 상태. 2.야한 것을 밝히는 사람을 일컫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