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소셜미디어에서 이모티콘 같이 생긴 이 인장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분이 있었다.
囧 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인장은 청나라 경소충(?~1686)의 "公"자 인장이다. 업계 사람들 사이에선 꽁실("gong" seal)이라는 귀여운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인장인데 정말 많은 그림에 찍혀있다. 게다가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중국미술사의 명작들이다.
경소충은 엄청난 규모와 퀄리티의 컬렉션을 갖출 수 있을 정도로 부와 권력을 쥐고 있었는데 그의 말년은 순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경소충의 큰형 경정충이 복건성에서 반란을 일으킨 게 타격이 컸을 수도 있겠다.
경소충과 동생은 큰형 반란에 가담하지 않아서 처벌받진 않았지만 경정충은 온몸이 얇게 썰리는 도분육지형으로 처형되었다. 경소충의 재산이 황실에 몰수됐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다. 다만, 경소충 아들 경가조가 물려받은 그림 포함 대부분이 다른 컬렉터들에게 팔리거나 판매된 그림이 몰수당하면서 황실로 들어간 걸 보면 2대에 걸쳐 가세가 많이 기울었던 것 같다.
우리 미술관엔 경소충이 소장했었으나 아들 경가조나 다른 컬렉터의 손을 거치지 않고 청 황실로 바로 유입된 그림이 있다. 명대 화가 당인(1473~1523)의 <야음도(夜飮圖)>로 미술관 소장품 중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다른 사람 손을 거치지 않았는지 어떻게 아냐고? 그림에 가득 찍힌 인장들이 말해준다. 경소충이 아들에게 물려준 그림이나 다른 컬렉터에게 팔린 그림에는 아들 경가조나 경소충의 컬렉션 일부를 구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삭액도의 인장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야음도>에 찍힌 소장인은 경소충, 건륭제, 선통제의 인장들 뿐이다. 이 그림은 아직도 청 황실에서 제작한 비단에 곱게 싸여 보관되고 있다. 이 그림이 정확히 언제 청 황실로 유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반란자 형 때문에 곤경에 처했을 때 경소충 스스로 황실에 헌납한 건 아닐까 나 혼자 상상하곤 한다.
<야음도>의 발문은 당인이 직접 쓴 <일년가(一年歌)>다. 사시사철 날씨에 불평하면서도 좋은 시절과 즐거운 순간을 놓치지 말고 누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읽을 때마다 미소 짓게 된다. 한글 번역은 다음과 같다.
1년 360일,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아흔 날.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이 가장 참기 힘든 시기,
추운 바람은 칼로 도려내는 듯하고 더울 땐 불에 구워지는 듯하다.
3월 봄, 9월 가을은 온화하다 하나 비바람이 많다.
한 해를 세심히 따져보면 좋은 날은 적고
아름다운 풍경 만나기란 더욱 어렵다.
만일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때를 만난다 해도,
마음이 즐겁고 기쁜 일까지 겹치기는 건 드물다.
높이 촛불 켜고 향기로운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저 헛되이 세상을 사는 것일 뿐.
옛사람이 참으로 통달하여 사람들에게 촛불 들고 밤 나들이하라 권했다.
봄날 밤 한 순간은 천금보다 귀하다지만
내 말하건대 천금을 준다 해도 그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一年三百六十日,春夏秋冬各九十;冬寒夏熱最難當,寒則如刀熱如炙。 春三秋九號溫和,天氣溫和風雨多;一年細算良辰少,況又難逢美景何? 美景良辰倘遭遇,又有賞心並樂事;不燒高燭對芳尊,也是虛生在人世。 古人有言亦達哉,勸人秉燭夜遊來;春宵一刻千金價,我道千金買不回。
요즘 같은 선선한 봄날에 어울리는 그림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좋은 그림은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산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