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현대미술이란
나는 17세기 전공자다. 그래서 17이라는 숫자만 들어도 두근거린다. 정확하게는 17세기 중국회화로 박사 논문을 썼지만 지역 상관없이 누군가 17세기!를 외친다면 그저 설렌다. 나한테 17세기라는 시기가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반면 누군가에겐 까마득한 먼 과거다. 그래서 종종 업계 밖 사람들로부터는 고리타분한 옛 것만 다룬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면 참 좋겠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학에 있든 미술관에 있든 비 서구지역 전근대 미술사 전공자들은 본인 논문 주제와 상관없이 졸업과 동시에 각자의 일터에서 짧게는 1천 년, 길게는 3천 년 범위의 역사를 다루게 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즉 현대미술 전공자가 옛 것도 다루는 일은 극히 드물다.
우리 부서에서는 매년 2회 소장품 구입을 추진한다. 그런데 전근대 작품은 진위 문제 및 천문학적 가격 때문에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덕분에 입사 후 꾸준히 동시대미술 작품을 구입하다 보니 왜 다들 현대와 동시대를 노래 부르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접근성이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작가가 살아있으면 대화할 수도 있고 메신저로 궁금한 점 바로바로 해결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죽은 지 몇 백 년 된 사람들만 다루다 눈앞에서 작가가 자기 작품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는 건 내 전공 분야 연구에선 얻을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이번 주에 구입을 얼추 마무리한 작품의 주인공 캉춘휘와의 첫 만남도 그랬다.
지난 3월 뉴욕 아시아위크에서 만난 그녀. 수수한 모습에서도 묵직한 진중함과 예리한 눈빛이 인상 깊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 출신으로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전통 공필화를 배웠다. 심지어 석사는 서울대 미대에서 마쳐서 한국어도 유창하다.
물론 더 인상 깊은 건 그녀의 작품이었다. 캉춘휘는 시중 안료를 절대 사용하지 않고 원료를 직접 채취 및 가공하여 모든 안료를 직접 제작한다. 그녀의 <수미산(Sumeru)> 시리즈 역시 진사 안료와 곤충을 응고한 랙 안료 모두 직접 만들어서 제작한 것이다. 흰색 바탕은 종이색이 아니라 역시 직접 제작한 흰색 안료를 칠한 것이다.
진사 같은 광물 안료는 묵직한 두께감이 있지만 랙과 같은 천연 안료는 수채화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성질이 다른 두 안료를 사용하여 어떻게 붓자국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매끈한 표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설명이 없다면 판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콜라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밀은 반복적인 세척에 있었다. 붓으로만 농담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각 채색 단계 사이 10~20회 표면을 세척하고 건조하는 엄청난 노동의 결과다. 게다가 두 전통 안료가 만들어낸 채도는 기적과 같다.
구입을 추진하고 글을 쓰는 동안 작가와의 만남을 생각하니 참 좋더라. 이 재미로 다들 현대미술이 좋다 하는 건가 싶다가도 역시 나한텐 17세기가 최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