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예술사이
얼마 전 배우 하지원의 작품 <슈퍼카우 3>이라는 작품이 5백만 원에 팔린 게 화두에 올랐다. 미취학 아동의 낙서 같은 이 그림이 5백만 원이나 한 다는 사실이 많은 이들의 놀라움을 샀나 보다. 하지만 작품의 절대적 가치와 가격은 꼭 비례하지 않는다. 아트페어를 가보면 비싼 벽지를 파는 가구상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슈퍼카우 3>과 비슷한 사이즈의 그림이라면 5백만 원은커녕 5천만 원도 쉽게 웃돈다. 최종 판매 가격은 작가의 기존 명성, 마케팅, 네트워킹을 비롯한 수많은 요소가 반영된 시장의 결과일 뿐이다. 5년 전 12만 달러에 팔리고 작년에 6백20만 달러에 팔린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이 좋은 사례이다. 어디 그뿐인가. 고미술 시장엔 위작들이 허구한 날 수백만 달러에 팔린다.
이런 장난 같은 작품들이 고가에 판매되어 이슈가 된다 하더라도 미술사의 지도에 남을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역사의 심판을 받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지금 당장 판단할 수도 없다. 오늘 5백만 원, 5천만 원에 팔린 그림은 5년 안에 시장통(옥션, 아트페어)을 전전하다 잊히거나 누군가의 창고에서 처분해야 할 고물이 될 수도 있다. 50년 후에도 여전히 처분해야 할 고물로 남아 있다면 다행이지만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골칫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다만 이런 자극적인 이슈에 현혹되어 동시대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놓쳐서는 안 된다. <슈퍼카우 3>나 <코미디언>과 정 반대의 경우로 나는 수묵화가 타이샹저우의 작품들을 떠올린다. 7세부터 서예를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44세에 칭화대 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야 화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분이다.
수묵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후 10여 년 간은 거폭 산수화나 우주경(宇宙景)을 묘사한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최근에는 고대 청동기 및 옥기를 소재로 하이퍼리얼리즘 수묵화를 제작하고 있어서 지난 2월 우리 미술관에서 최초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누군가는 그저 옛날 물건 보고 그냥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 아니냐고 지나갈 수 있겠지만 수묵이라는 매체 특성을 상기하면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그림들이 아니다. 덧칠로 계속 수정하고 다듬어나갈 수 있는 유화나 아크릴화와 달리 수묵화는 수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타이샹저우가 작년부터 제작하고 있는 이 시리즈는 각 작품이 가로 7미터에 달하는 횡권으로 이루어졌다. 종이에 한 번 흡수되면 돌이킬 수 없는 수묵만을 사용하여 이런 하이퍼리얼리즘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단순한 재현 스킬보다도 치밀한 계산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이퍼리얼리즘 수묵화에 적합한 종이를 제작 및 선별하고 수묵 레이어 사이사이의 건조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그 시간을 제외한 순전히 “그리는” 시간만 작품 하나당 최소 50~6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슈를 몰고 고가에 팔리는 것만이 예술이 아니듯, 화선지에 수묵으로 그린 재현적 회화라고 동시대/현대미술이 아닌 것도 아니다. 구매자와 감상자의 취향이 다 다르듯 아티스트의 면모도 다 다른 것이 동시대미술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난 17세기 미술이 더 재미있긴 하다 (예전 글 참조).
(제가 기획한 작은 전시 Affirmation of Stone and Metal에 대한 영문 소개는 이 글을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