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
한량이란 보통 일정한 직업이 없이 놀고먹던 말단 양반 계층을 일컫는다. 소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히 지내는 사람'에게 '한량'이라는 표현을 쓴다. 직장 내 인사 시즌이 되어 종종 연락을 받는다. "슬슬 복직할 때 되지 않았어?", "아니 대체 뭐 하는데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아?"라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면 나는 "그냥 혼자서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책 읽고, 밖에 나가서 달리기도 하면서 지내요"라고 차분하게 답한다. "뭔가 변했는데? 내가 알던 열정적인 최승호의 모습이 아닌데? 매너리즘에 빠진 것 아니야?"라는 말까지 들은 적도 있다. "그건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한마디도 안 하다가 지금 통화로 처음 말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답한다.
남들 눈에는 한량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만 그 바쁨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올해 4월에 첫 책인 '아이들은 죄가 없습니다'를 출간했고, 두 번째 책으로는 '하루 5분, 나를 찾는 컬러 도트 감정 필사'가 추석 전후로 출간될 예정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조금씩이라도 쓰다 보니 나의 글이 실제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 첫 책을 받았을 때의 짜릿한 전율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 전율과 책 판매량이 비례 관계가 아닌 점은 조금 아쉽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전율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매일 달리기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건강을 위해 시작했는데, 이제는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물론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거리를 줄이거나 강도를 낮춘다.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달리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쁜 것을 업무량으로만 판단하는 것 같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 회의하는 시간, 출장 가는 횟수. 하지만 진짜 의미 있는 바쁨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매일 글을 쓰는 것, 책을 읽는 것, 달리는 것,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아내와 대화하는 것. 이런 것들이 내게는 업무량이다. 남들 눈에는 한가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하루하루가 빡빡하다.
그렇다면 적당한 업무량이란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들로 하루를 채우는 것이 적당한 업무량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보기에 바쁘든 한가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만을 위해 사는 것도 아깝다. 균형이 필요하다.
지금의 내 삶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고민도 많고, 불안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다는 확신은 있다. 한량처럼 보여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