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주인공

완주 그리고 35km에서 먹는 바나나의 맛

by 최승호

2주 전,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에 혼자 도전하여 완주했다. 2주 뒤, 이미 지인과 함께 신청해 놓은 2025손기정평화마라톤 풀코스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올해 4월에 달리기를 시작한 지인과의 함께한 달리기였다. 나는 두 번째, 지인은 첫 번째 풀코스 도전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풀코스 무사 완주를 넘어 서브4(4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였다. 2주 전에 3시간 40분 이내로 완주했던 나의 경험을 살려 지인과 함께 서브4에 도전했다.


수많은 인파가 아침 일찍부터 고양종합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스트레칭과 내빈 소개를 마친 후 09:00에 카운트다운과 동시에 레이스를 시작했다. 첫 1km는 늘 병목현상으로 6분대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여유 있게 달렸다.

지난번 마라톤 때와 비슷하게 도로교통 통제가 잘되어 있어 사고 위험 없이 안전한 대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평온한(?)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2.5킬로미터마다 급수대가 있어 심적으로 안정되었으나 5km, 7.5km, 10km 연속 세 군데에서 급수를 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사람들 틈에서 조금만 더 앞에서 마셔야지 밀리다가 급수대가 끝나버렸다. 다시 돌아가서 마시기도 애매했다. “에이, 그냥 가자” 그나마 페이스가 빠르지 않아서 큰 타격은 없었다. 에너지젤은 준비한 대로 7, 14, 21킬로미터에서 잘 먹었다.


우리는 호흡, 보폭 등 문제없이 준비한 페이스대로 잘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라톤은 요령 없는 정직한 운동이다.’를 체감하는 순간이 왔다. 바로 사점이 찾아온 것이다. 30킬로미터 지점에 들어서자마자 몸에서 ‘30킬로미터 이상 달려본 경험 없잖아.’를 기다렸다는 듯 신호를 보내왔다. 대부분 하체 부위인 발목, 종아리, 허벅지 부근에 증상이 나타날 줄 알았다. 지인의 왼쪽 어깨 부위 통증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연이어 나온 업힐(오르막길) 구간에서 호흡까지 꼬여버렸다.


우리는 30킬로미터까지 2시간 47분대로 달렸다. 예상했던 기록보다 3분가량 빠르게 달려서 사점을 맞이한 것이었을까? 출발 전 스트레칭 부족이었을까? 아니면 풀코스 대비 장거리 훈련을 하지 않아서였을까?


지인 : 나 때문에 레이스 망쳐서 어떡해.

나 : 어차피 출발부터 도착까지 함께 완주하기로 약속했으니까 기록 신경 쓰지 말고, 풀코스 첫 참가에 같이 완주해요 형.


나 : 형이랑 저랑 둘 다 4월부터 달리기 시작해서 9월에 15킬로미터 처음 뛰고, 10월에 하프코스 나가고, 11월에 풀코스에 도전한 거잖아요. 마라톤이 재미있는 운동인 게 변수가 너무 많아요.

지인 : 미완성으로 남아서 좋네.

나 : 인생을 죽을 때까지 미완성이죠.

지인 : 달리면서 인생을 배운다.


맞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벽하게 대비한다고 올해가 아닌 내년에 참가한다 해도 오늘보다 기록이 더 좋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인생을 살다 보면, 완벽을 추구할 수는 있어도 정말 완벽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생각해도 완벽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풀코스 첫 도전에 서브3라는 엄청난 기록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뭐든 하는 일마다 척척 성공해 내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완벽하게 준비해서 이룬 성공일까? 아니라고 본다. 수없이 많은 실패와 포기하지 않는 반복 과정을 통해 이룬 성취, 성공일 것이다.


우리가 목표했던 서브4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번 레이스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무사히 완주해 냈다. 시작부터 끝까지 42.195킬로미터의 긴 여정을 함께 해낸 것이다.

지인 : 승호야, 네 덕분에 완주했다. 혼자였으면 중간에 포기했을 것 같아.

나 : 아니에요 형. 저도 30킬로미터 지나고부터 다리 무거워졌어요. 저도 형 덕분에 두 번째 풀코스 완주한 거예요.

서로 진심이었다. 혼자 달리는 것도, 함께 달리는 것도 각각의 매력이 있다. 그렇게 우리는 골인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완주메달과 기념품을 받고 집으로 향했다. 포토존에서 줄 서서 기다릴 여력도 없었나 보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의 품으로 얼른 가고 싶었다.


우리는 오늘도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 순간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임은 분명했다.


잊을 수 없는 30킬로미터에서 먹은 바나나

첫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했을 때에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정말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데 이번 두 번째 풀코스 도전에서는 30킬로미터 이후부터 페이스가 떨어져서 자연스레 주위도 둘러보고 다른 참가자들의 거친 호흡과 발걸음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었다.

특히, 35킬로미터에서 먹은 바나나 반틈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뭐 그래봤자 바나나지, 얼마나 맛있겠어?’, ‘마라톤 35킬로미터 지점에서는 뭘 먹어도 맛있겠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다음 풀코스부터는 35킬로미터 이후에 나오는 보급품은 반드시 챙겨 먹을 예정이다. 사르르 녹았던 달콤한 바나나의 맛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라도 내년에도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할 것이다.


35킬로미터에서 먹은 바나나의 맛과 풀코스 완주 직후의 성취감을 모두가 느껴봤으면 좋겠다. 여러 번 느낄 필요도 없다. 인생을 살면서 한번 정도는 느껴보길 바란다. 서브3, 서브4 등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쿵쾅쿵쾅 뛰는 심박과 페이스에 맞춰 완주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완벽하지 않다.

그냥 냅다 달릴 뿐이다.

월요일 연재
이전 11화성공에 취해보는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