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에 취해보는 감각

첫풀에 배부르랴!

by 최승호

4월 1일에 달리기를 시작한 후 7개월이 지났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2주 간격으로 마라톤 하프-풀-풀코스를 접수해 놨다. 첫 하프코스 도전은 지인과 함께 기분 좋게 웃으며 완주했다. 다음은 우리나라 마라톤 대회 중 인기가 많은 JTBC서울마라톤 풀코스였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기도 전인 3월에 이미 접수가 마감되었다. 그런데 취소자가 발생하면서 추가 접수 기회가 주어졌다. 당첨되면 달려보는 거고, 떨어지면 더 준비해서 내년에 풀코스에 도전해 보고자 다짐했다.


역시 ‘럭키가이’였다. 추가 접수에 당첨되어 달리기 입문 7개월 차에 풀코스에 도전하게 되었다. 대회 당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다. 2025년 11월 2일 일요일 05:10에 기상하여 물 한 모금과 바나나 1개를 먹고 지하철로 향했다. 전날 22:00경에 잠든 덕분에 컨디션이 좋았다. 지하철 첫 차는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마라톤 대회로 향하는 러너들이 많이 보였다. 대회 집결 장소는 월드컵경기장역이었는데 공항철도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이미 많은 러너, 크루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회 복장으로 환복하는 등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이곳이 월드컵경기장역인 줄 알았다. 추운 날씨에 우비도 챙기지 않았고, 나중에 아내와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07:40까지 물품보관소에 모든 짐을 맡기라는 안내 방송이 연이어 나왔다. 우비가 없어 물품보관소 앞에서 07:38까지 체온을 유지하고자 환복하지 않고 버티다가 마지막에 짐을 맡겼다. 대회 출발 시간이 08:00라고는 하나 마라톤 풀코스 기록이 없기에 맨 뒤 그룹인 G그룹에 배정받았다. 조별로 3~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해도 08:20은 지나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우비 없이 나 홀로 서서 40분 넘게 찬바람을 맞으며 서있었다. “아니 출발은커녕 언제 움직이는 거야?”, “앞 상황은 전혀 모르고 스피커는 들리지도 않고, 우리 마지막조는 꼼짝도 하지 않네.” 주변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출발 전 지인들과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응원하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며 나 혼자서 속으로 조용히 응원하며 08:25경 인생 첫 마라톤 여정을 떠났다.


평지를 달릴 때는 몰랐으나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와, 마라톤 풀코스 참가자가 이렇게나 많다고?’ 혼자서 병목 현상을 뚫고자 안간힘도 써봤고, 병목 흐름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기도 했다.


첫 도전이라 ‘오버페이스는 금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버페이스라는 단어가 민망하게 첫 1킬로미터는 620 페이스로 오히려 다운페이스였다. 병목 덕분에 초반 페이스 관리가 저절로 된 셈이다. 코호흡에 전혀 무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느낌이 좋았다. 체계적인 훈련 없이 거리주는 30킬로미터 1회 뛰어본 것이 다였다.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끝까지 걷지만 말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첫풀에 배부르랴!’

심지어 에너지젤의 효과도 제대로 모르고 일단 5개를 챙겨갔다. 7, 14, 21, 28, 35킬로미터 부근에서 먹고자 다짐했다. 초반 페이스 관리 덕분에 5km에서 첫 급수를 하고, 7킬로미터가 아닌 7.5킬로미터에서 첫 번째 에너지젤을 하나 먹었다. 달고 달아서 기분이 좋아졌고, 역시나 에너지젤은 심리적으로 안정 효과를 맛봤다. 10킬로미터 부근에서 두 번째 급수, 15킬로미터에서 에너지젤을 하나 더 먹고 급수를 했다. 에너지젤이 잘 흡수되려면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혼자서 주로 왼쪽으로 달리다 보니 급수하러 갈 때마다 안쪽으로 들어가야 해서 20킬로미터에서는 목이 마르지 않아 급수를 하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세 번째 에너지젤은 22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며 먹었다. 15킬로미터부터 4분 후반대 페이스로 달려서 속으로 계산해 보니 330 언더(3시간 30분 이내 완주)가 가능할 것 같았다. 31킬로미터까지도 4분 후반대를 유지하며, “할 수 있다. 밀어보자!”를 몇 번 외쳤다.


하지만 풀코스 첫 출전의 한계 혹은 부족한 훈련량 때문이었을까. 34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며 왼쪽 다리가 무거워졌다. 그렇게 34~35킬로미터에서 517 페이스로 느려졌다. 28km, 35km에서 에너지젤을 먹으며 힘을 내어, 37km 503, 38km 507 페이스로 달렸으나, 마지막에 520 페이스가 되며 42,195km를 평균 510 페이스로 마무리했다. 마라톤 풀코스 첫 도전에 3시간 39분 35초를 기록했다.

4시간 이내 완주를 뜻하는 서브 4를 달성했다. 도착지점에 골인 후 만감이 교차했다. 한 번도 걷지 않고 해냈다는 성취감이 가장 컸다. 이후 레이스를 복기하면서 20km, 40km 부근에서 급수했더라면? 바나나 등 보급품을 하나도 먹지 않았는데 먹을걸!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평균심박수가 146 bpm으로 기록되었는데 160 bpm이상은 나오게끔 더 열심히 달렸어야 했을까? 너무 안일하게 보수적으로 달린 걸까? 이전 장거리 훈련이나 누적된 데이터가 없어서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도착지점에서 나를 맞이해 주기 위해 출발했던 아내와 아이들은 마라톤 대회 교통통제로 도착지점에 오지 못하고 잠실역 인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완주 메달을 받고, 환복한 뒤 잠실역을 향하려는데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애매한 거리였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가족의 품으로 걸어갔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 후 집에 제대로 걸어오지 못할까 봐 멀리 서울까지 응원 와준 아내와 아이들을 보는 순간 울컥했다. 내가 이렇게 도전할 수 있고, 도전해야 하는 이유가 떠올랐다. 그 이유는 바로 나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뿐이었다.


2주 전, 효도밥상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 당시에는 힘도 더 남았고, 웃으며 도착했다. 하프코스와 풀코스의 차이를 제대로 느낀 하루였다. 앞으로도 종종 하프코스와 풀코스에 도전할 생각이다.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고자 함이고,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기록을 단축하고자 체계적인 훈련을 할 생각은 없다. 지금처럼 매일 꾸준히 달리기를 통해 기부하는 것이 가장 큰 취지이자 이유이다. 매일 달리려면 아프지 않아야 한다. 다치지도 않아야 한다. 지금껏 해온 것처럼 부상 없이 나의 강점인 꾸준히 달리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이렇게 달리고 기부하다 보면 내 주변에 달리기를 시작하고 기부하는 사람들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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