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내가 무언가를 한다고 했을 때 무조건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반대로 내가 그릇된 판단을 했을 때 진심으로 나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응원이 필요할 때고 있고, 진심 어린 조언이 필요할 때도 있다. 때로는 묵묵히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큰 힘이 될 때가 있고, 큰소리를 쳐서라도 변화하게끔 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주로 누군가에게 힘을 복 돋아 주기보다는 그 힘과 응원을 받는 쪽이었다.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 탓에 조언이 필요한 순간에도 말을 아꼈다. ‘내가 뭐라고 감히 누구한테 조언을 하고 충고를 해. 기다리다 보면 알아서 잘하겠지.’ 누군가에게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정말 필요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모습은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상대방을 나름 배려한다고 말을 아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 셈이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말을 아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식 잘되라고 해주던 부모님의 말씀을 잔소리로 치부했다. ‘알았으니까 제발 그만 좀 이야기하세요.’ 속으로 되뇌었다. 좋은 소리도 수십 번 듣다 보면 잔소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도 부모가 되어서야 내가 받은 것이 잔소리가 아니라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어렸을 땐 몰랐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간섭하시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나의 오만이었다. 물론 어렸을 적 깊게 박힌 이 생각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가족을 떠나서 지금도 누군가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조언을 했을 때 앞에서는 듣는 척을 하지만 사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나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지인들은 잘 알고는 “최승호 말 진짜 안 듣네.”라고 말한다. 엊그제 설 명절 연휴를 잘 보내고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아이들에게 “아빠가 엄마 말 잘 듣는 것 같아? 안 듣는 것 같아?”라고 묻자, 아이들은 장난스럽게 “아빠가 엄마 말 잘 안 듣지.”라며 웃으며 답한다. 이에 나는 당당하게 “아빠는 누구의 말도 안 들어. 그나마 엄마 말을 제일 잘 듣는 거야.”라고 답하니, 어리둥절해하는 아이들과 가당치 않다는 아내의 표정 뒤로 한 번 더 강조했다. “진짜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누구 말을 들어본 적이 없네.” 말 그대로 아내 말은 잘 들어야 한다. 내가 먼저 잘 들어야 아내도 내 말을 잘 들어준다. ‘잘 들어준다.’는 의미에는 첫째 소리 나는 대로 듣는 것, 둘째 집중해서 들어주는 경청의 자세, 마지막으로 경청 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도움 주고 응원해 주는 자세로 나눌 수 있겠다. 소리 나는 대로 혹은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경청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는 없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도 에너지 소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관심이 있고, 소통하고자 한다면 경청의 자세는 필수다.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경청의 자세만 보여도 성공적인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아내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가정 내 배우자에게 경청의 자세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두고, 두 귀를 쫑긋 세우고, 한마디 한마디를 놓쳐서는 안 된다.
예전에 업무적으로 가정폭력 및 학교폭력 관련 대상자들을 만나고자 수차례 가정 방문을 했다. 당시에도 문제는 ‘소통의 부재’였다. 부부간의 갈등, 부모-자녀 간의 갈등, 청소년 또래 간의 갈등 등 대부분이 사소한 소통 문제였다. 시작은 단순 소통 문제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문제도 복리처럼 쌓여 티격태격을 넘어 범죄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를 10년 간 봐왔다. 대부분 주장하는 것이 “저 사람은 나를 대놓고 무시해요. 무슨 말을 해도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도 하지 않아요. 내가 속이 타요 안타요.”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제가 처음부터 그랬겠어요? 저 사람은 그냥 벽이에요. 무슨 말을 해도 굳게 닫혀 있어요. 아이 육아도 제가 독박 육아로 다 키웠어요. 그래놓고 이제 와서 저한테 이러는 게 웃기지도 않아요.”라며 입으로 시작한 싸움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는 전쟁으로 번져 결국 한쪽에서 피를 흘려야 끝이 난다. 이러한 사안들을 보면서 늘 생각한다. 분명 결혼할 때부터 서로 피를 보려고 시작한 결혼이 아니었음에도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행동하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저주를 퍼붓는다.
지금의 아내와 당시에는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아내는 가정폭력 담당, 나는 학교폭력 담당으로 암담한 현실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이런 경우도 종종 있었다. 부부간 폭행 건으로 가정 방문을 갔는데 자녀들이 내가 알던 학교폭력 관련 당사자였다. 당사자 즉 관련학생 중에서도 피해학생보다는 가해학생들이었다. 반대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소년범 등 위기청소년 대상 가정 방문을 갔는데 별거 중인 부부, 경찰공무원 앞에서도 욕설을 서슴지 않으며 서로를 깎아내리는 부부, 대놓고 자식에게 면박을 주는 부모들을 많이 만났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에 업무적으로 경험한 것들이 현재 나의 결혼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직접 본 것들을 반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사실 결혼 전에는 이해를 못 했다. 내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행복하려고 결혼했으면 행복하게 지내기도 시간이 없는데 그 시간에 죽일 듯이 싸우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가정 방문에 가서 “죽일 듯이 싸우지 마시고, 죽일 듯이 사랑하세요.”라고 할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경청했다. 길게 이야기하지만 결국 반복되는 내용이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 사람이 먼저 제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무시했어요.”라며 진심 어린 이해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만을 원했는데 그마저도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당시 ‘회복적 대화 모임’의 전문 진행자는 아니었지만 나름 중간에서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통해 서로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해 주고자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초임 시기에 그 자리에서 그 업무들을 맡으면서 인생을 배운 셈이다. 그렇게 아내와 업무적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의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났던 수많은 가정의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 아직까지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다음 주면 결혼기념일 8주년!) 우리는 서로를 아끼고 응원한다.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지지해 주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으면 서로 의논 후 결정한다. 절대로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루 일과 중 함께 달리는 일정이 불가능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면 서로가 돌아가며 육아와 달리기를 병행한다. 마라톤 대회 접수 전, 가족 일정을 확인한 뒤, 사전 검토 후 접수를 한다. 둘이 함께 달릴 수 있는 일정이 나오면 함께 접수하여 같이 레이스를 펼친다. 배우자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건강한 노후를 위해 함께 동행하는 셈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 많은 시간을 보내도 지루하지 않고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삶을 살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함께 달리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모두 함께 한다. 하루하루 만족을 넘어 대만족 하는 삶을 살고 있기에 매일 쓰고, 달리고, 읽고를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