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못해도 괜찮아

하지만 예쁘게 해야 돼

by 최승호

나는 상대방과의 대화 시 경청하는 자세는 수준급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전문적인 대화 스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귀담아듣는 척을 연습하다 보니 자연스레 높은 경지에 다다르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듣는 스킬에 비하여 말하는 스킬이 많이 부족하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하지 않았으며, 사람들과 대화도 즐겨하지 않은 결과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다.


말을 잘한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있는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발표를 하거나 독서 모임 등 소수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하거나 질문에 답변을 할 때 단답형이 아닌 마치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음성이 나오는 인형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의견을 장황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 많이 부럽다. 나도 가끔은 '토커'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말을 잘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그나마 예쁘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수준이다. 말을 잘하지 못해서 더욱 말에 대해 민감한 편이다. 오늘 하루도 아직 반나절이 남았지만 벌써 말 한마디로 수차례 울고 웃었다.


"오늘 첫차 타신 거예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아이들 등교, 등원 후 주차장에 주차 후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순간, 청소 아주머니께서 "아이고, 딱 30초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열림 버튼을 누른 채 기다리고 있었다. 70대로 보이시는 아주머니를 종종 뵐 때마다 인사를 드렸는데 그럴 때마다 '인상이 정말 좋으시다.'라는 생각을 했다. 좋은 인상과 비례하여 늘 먼저 인사를 드리면, 그냥 안부 인사가 아닌 "예,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오늘도 많이 웃는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해주신다. 인사를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감탄 밖에 안 나온다. 정말 말 한마디가 중요하구나. 오늘 아침에도 30초 밖에 안 기다렸는데 나오시면서 "오늘 세차 깨끗이 했어요. 첫차 타신 거예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해주시는데 하마터면 늘 말씀해 주시는 수려한 언어의 비결에 대해 물을 뻔했다.


"물 많이 드시면 안 돼요. 물값 내세요."

문화체육센터에서 2개월째 수영 중급반 강습을 듣고 있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5~6월 중급반이 끝난다. 같은 영법인데도 어느 날은 잘되고 또 어느 날은 힘들다. 아직 내 실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다. 수강생이 많은데도 선생님은 한 명 한 명의 부족한 점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그렇게 오늘도 자유형, 배영, 평영을 돌아가면서 하는데 선생님의 센스가 엿보이는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 : 제가 알려드린 대로 하니까 조금 나으시죠?

수강생 : 예, 확실히 나아졌어요. 그런데 물을 많이 먹었어요.

선생님 : 어, 수영장 물 많이 드시면 안 돼요. 물값 내세요.


강습 회원들 모두가 거친 호흡을 몰아내시며 힘들어하는데 센스 있는 선생님의 한마디로 모두 웃으며 그 순간만큼은 잠시 고통에서 벗어났다. 선생님은 평소에도 회원들이 기분 나쁘지 않게 알려주면서도 또 강습할 때에는 확실하게 한다. 카리스마와 센스를 모두 겸비했다. 부러움 한 스푼 추가.


"괜찮아요. 연습하다 보면 모르고 찰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 거지.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수영 영법을 얼른 마스터하고 싶은 이유이다. 오늘도 수영 중급반 강습을 받고 있던 중 평영 발차기를 하는데 옆에 연수반 자유수영을 하시는 어르신의 왼쪽 어깨를 차버렸다. 레인 중간에서 발생하여 나도 놀란 나머지 바로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렸다. 양 측 레인 모두 뒤에서 다른 분들이 따라오고 있는 상황으로 얼른 비켜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르신께서 꼼짝하지 않고는 "내가 관절이 안 좋은데 이런 식으로 차면 안되지. 너무 아프네. 조금만 신경을 쓰면 발로 안 차고 할 수 있는데. 너무 아파"라고 하여 무조건 내 잘못이니 거듭 사과를 드렸다.


바로 옆 레인이라서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어르신께서 우리 중급반 선생님께 항의를 하였다. "아니, 평영은 레인 가운데에서 해야 옆 레인 사람 발로 차지 않죠. 방금 어깨를 맞았는데 너무 아파요. 가뜩이나 고관절도 안 좋은데 신경 좀 써주세요." 바로 옆에 있어서 너무 잘 들렸다. 안 그래도 수영 영법도 엉망이라 면목이 없었는데 이렇게 나 때문에 괜히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듣게 해 드려 더욱 면목이 없었다. 그렇게 끝나나 싶었다. 내 차례가 되어 출발 전 옆 레인에 바로 계셔서 또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드렸더니 "진짜 너무 아파요. 신경 좀 써주세요."라고 하여 마지막으로 "예, 죄송합니다."하고 서둘러 반대편 25m로 향했다. 거의 도망가는 수준이었다. '반대편에 또 계시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원래도 느린데 더 천천히 갔다. 그렇게 겨우 도착해서 숨을 고르는데 우리 반 회원 분께서 "에이, 괜찮아요. 연습하다 보면 서로 찰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 거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저도 하루에 몇 번씩 옆 레인하고 부딪쳐요." 그 순만만큼은 위로가 되었다. 일단 고의든 실수든 내가 발로 찬 행위는 무조건 잘못한 것이다. 3분 내로 죄송하다고만 10번 넘게 사과를 드렸다. 어찌 됐든 내 잘못이고 많이 아프셨을 것이다. 하루 종일 죄송한 마음이다.


나는 앞으로 말을 예쁘게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9화혼자서 힘들면 함께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