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뭐라 해도 괜찮아

비교할 것도 없고, 반응할 필요도 없다.

by 최승호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쇼핑을 하다 보면 비슷한 물건인 것 같은데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제품이 비싸면 왜 이렇게 비싼지 혹은 다른 곳보다 현저하게 싸면 또 왜 이렇게 싸게 팔지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하루에 수십 번씩 이것과 저것, A와 B를 비교하게 된다. 비단 비교하는 대상은 물건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교는 끝나지 않는다. 가령, 같은 뱃속에서 나온 첫째와 둘째의 다른 성향을 보면서도 '어쩜 이렇게 같은 뱃속에서 나왔음에도 정반대지?'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비교를 하고, 비교를 당해봤을 것이다. '누가 더 잘생겼네', '누가 더 말랐네', '누가 성격이 더 좋네', '누가 더 부지런하네' 등의 비교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과는 반대로 비교를 당하면서 비교우위가 아닌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도 의기소침해지거나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많은 비교를 당했음에도 이상하게 크게 개의치 하지 않아 했다. 말 그대로 그러려니 했다. 비교를 하려면 분석을 해야 하는데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서 분석도 해주고, 비교(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기에 성인이 되어서는 나에 대해 진심으로 충고를 해주거나 비교를 해주면 감사한 마음까지 생겼다. 비교 대상들 간의 어느 정도 '급'이 맞아야 비교를 당해도 멘털이 흔들리거나 심방이 바운스 할 텐데 요즘 보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대상들 간의 억지로 끼워 맞추기 식의 비교 행위는 듣는 이로 하여금 시간 낭비일 뿐이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했다. 더운 날씨와 상관없이 20년 된 친구들이기에 장소가 서울이어도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편한 차림으로 만났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이동하는 길에 친구가 "오~ 제환이 운동하더니 승호랑 패션도 비슷하고, 운동화도 비슷하네. 운동인들은 비슷해지는 건가"라면서 한마디를 하자, 다른 친구가 "그러네, 거의 다 비슷하네"라면서 웃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워낙 어렸을 때부터 알았기에, 만남에서부터 헤어질 때까지 서로가 서로를 놀린다. 하지만 아무리 놀려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멘털이 강해진 건지, 별로 타격감이 없다. 그냥 웃어넘긴다.


예전 어린 시절 같았으면 괜히 또 툭툭 거리는 한마디를 하면서 시비가 될 수도 있고, 얼굴이 벌게져서 서로 간 불편한 분위기가 될 수도 있으나 이제는 비교나 조롱에 무뎌진 것 같다. 그런 것에 대응하는 시간조차 아까운 느낌이랄까. 상대방을 놀렸을 때, 상대방이 크게 흥분하거나 재미있는 리액션을 보여줘야 놀리는 사람 입장에서도 더 놀리고 싶고, 더 장난을 치고 싶어 한다. 반대로 당하는 사람이 시큰둥해하며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놀리는 사람도 김이 샜는지 더는 장난을 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카페에 가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담소를 나누었다.


업무적으로 10대 청소년들 간의 학교폭력 사안을 많이 접한다. 예전에는 신체 폭력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보다는 SNS상 저격글, 익명의 게시글, 언어폭력 등 정신적 폭력 행위가 주를 이룬다. 어른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인데, 아직 10대 청소년들에게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히는 듯하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SNS를 하지 말라고 당부해도 뒤돌아서면 중독된 것 마냥 게시물을 새로고침하며 확인한다. 자신이 올린 게시글에 대한 댓글도 수시로 확인을 한다. 그러다가 부정적인 댓글이 달리면 그거 하나에 세상이 무너지듯 속상해한다. 상대방이 아무런 생각과 의도 없이 댓글을 달았다 하더라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피눈물을 흘린다. 신체적인 아픔이야 치료를 하고 시간이 흐르면 낫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신적인 상처, 아픔은 눈에 보이는 치료부터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낫겠거니 싶지만 실제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수년이 흘러도 나아지기는커녕 복수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한 피해자들을 보면서 '참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 같다'를 느낀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을 믿어주는 어른이나 친구 단 한 사람만 있으면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아할텐데, 그들의 인생에서 그러한 존재 단 한 명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없다고 징징거릴 순 없다. 스스로 단단해질 수밖에. 스스로 힘들다면 올바른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단단해져야 한다. 그 어른이 자신의 부모님이나 보호자이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업무적으로 그렇지 못한 상황을 10년 간 봐왔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인생을 살면서 힘들 때 의지할 수 있고, 나의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1명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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