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만 괜찮아
육아휴직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아이들 등·하원, 수영, 러닝, 웨이트 등 개인 운동, 독서, 필사가 하루 일과이다. 혼자 집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에도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 천직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적성에는 맞는 것 같다. 어딜 가서도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조용히 경청하는 척하기가 주특기인지라 혼자 있는 시간이 전혀 외롭지가 않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기보다는 옆에 아내가 있으면 수영을 가지 않고, 함께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 등 또 재미있게 논다. 어린아이 육아를 하는 보호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주말에 아이들과 근교 아울렛에 가는 것과 평일에 부부 단둘이 아울렛에 가는 것의 차이를. 아이들과 함께 가면 매장 2~3군데도 겨우 둘러보다가 귀가한다. 평일에 단둘이 아울렛이나 백화점 구경을 가면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녀도 시간이 남고, 보이지 않았던 물건들이 자세히 보인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틈새를 노린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경청 모드인데 아내와 있으면 서로 대화를 나누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이야기한다. 사실 주된 대화 내용은 어떻게든 서로를 웃기고자 우스갯소리도 많이 한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아내와 하루 종일 함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혼자 있는 시간에 독서와 운동만 한다. 독서와 운동만 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휴직하면 시간도 여유롭고 엄청나게 여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느라 시간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혼자 있을 때 남는 것은 독서와 운동뿐이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운동만 하니 크게 아프거나 불편한 곳도 없다. 집에서도 제일 건강하고, 고등학교 동창 모임, 직장 동기 모임에 나가도 제일 건강하다. 건강 하나는 자신 있어하던 찰나, 아내가 퇴근길에 '공진단'을 사 왔다. 함께 건강을 챙길 겸 같이 먹자고 수개월치 공진단을 사 왔다. 나는 당연히 극구 부인했다. "육아휴직해서 일도 안 하고 있는데 내가 뭐 하러 챙겨 먹어, 챙겨 먹어야 할 사람은 당신이지" 안 그래도 회사에서도 "아니, 남편이 육아휴직하고 있는데 공진단을 왜 챙겨주는 거야?"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일주일째 공진단을 함께 먹고 있다. 심리적인 효과인지는 모르겠으나 더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넘치는 에너지로 아내와 함께 지난주 아울렛에 갔을 때 잠깐 러닝화를 착용해 봤다. 사이즈 확인 겸 나중에 할인할 때 구매하고자 신어봤을 뿐이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평소 유튜브도 잘 시청하지 않던 내가 요즘은 알고리즘 덕분에 수영과 달리기 콘텐츠를 주로 시청하고 있다. 수영 영법과 러닝 자세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난주에 신어봤던 러닝화를 보여주었다.
이러니 아내에게 충성을 아니 아내를 사랑할 수밖에.
심지어 달리기를 하지 않던 아내도 러닝화를 구매했다. 수영과 아파트 헬스장에 이어 시간 날 때마다 러닝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 옆에 놓여있는 공진단과 러닝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속담이 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