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미국, 한국 교육의 차이, 그리고 시사점
부제: 지금의 나를 있게해 준 독일 초등학교 4학년 교육, 그리고 이를 통해 본 핀란드 교육의 힘
1. (핀란드 교육과 유사한) 독일 교육과의 만남
초등학교 4학년 때 독일에서 1년 간 거주한 적이 있다. 마인츠라는 중소도시에 살았는데, 영어로 진행되는 국제학교 대신, 동네에 있는 독일 현지 초등학교를 다녔다. 덕분에, 독일 현지 교육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때 보고 배우고 느낀 경험은 지금까지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남아있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이후, 대학 진학을 위한 김나지움과, 직업학교인 레알슐레/하우프슐레로 나뉘어진다. 당시 나는, 대다수 학생들이 김나지움 진학을 위해 학원을 다니며 성적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리라 생각했었다. 한국 방식으로 생각한것이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독일 초등학교 4학년의 삶은,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오전 8시 30분까지 등교해 오후 1시면 집에 돌아갔다. 방과 후엔, 친구들끼리 동네 공원에 모여, 스케이트 보드도 타고, 축구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며 뛰어 놀았다. 2~3시간 뛰어 논 다음엔 각자 집에 들어가 20~30분 간 숙제를 하고, 가족과 저녁을 먹고, TV 를 30분 정도 보고,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고, 밤 9시면 잠에 들었다. (독일엔 밤 9시 이후 자녀들을 잠을 재우는 문화가 있었다)
학교 수업은 4교시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산수와 독일어, 스포츠, 음악, 지식이 핵심 수업이었다. 산수는 문제풀이 보다는 원리이해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시험 및 숙제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수업마다 보조 선생님이 있어, 수업을 못따라가는 학생들은 보조 선생님이 별도의 방에서 따로 수업을 진행했다. 나는 독일어/지식 시간에는 보조 선생님과 혼자서 독일어 기초 수업을 들었다.
이 곳 학생들의 부모님 및 담임 선생님이 가장 눈여겨 보는 것은, 학생들의 적성과 행복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4년 간 같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학생들의 성향 및 적성에 대해 매우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언제 기쁘고, 언제 슬프며, 언제 화내고 즐거워하는지, 그들의 다양한 감정을 drive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 나의 특성/적성에 대해, 담임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는, 아직까지 머리에 남을 만큼, 구체적이고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었다.
"이 아이는 머리가 좋습니다. 산수를 특히 잘합니다. 눈치 역시 굉장히 빠른 편이어서, 친구들과도 원만히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눈치가 빠른건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관이 뚜렷했으면 좋겠습니다. 다툼이 있어도 좋으니, 친구들과의 의견 대립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김나지움 진학이 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아이가 꿈의 정의와 가치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산수를 공부하는 시간 만큼, 독서/여행 등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꿈을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에 따르면, 독일의 학부모님들 역시,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시 “우리 아이 김나지움에 꼭 보내주세요. 어떻게 하면 김나지움에갈 수 있을까요?” 라 질문하지 않았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무엇을 잘하고 즐기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질문하였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의 판단을 존중하고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담임 선생님께, “우리 아들이김나지움 갈 수 있냐?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는냐?” 라고 물어본 것은 우리 어머님밖에 없었다고 했다.
독일 초등학교엔 다양한 문화권의 초등학생들 (독일계, 터키계, 중국계가 가장 많았다) 이 모여 있어, “음식 나누기” 등 문화 교류 행사가 자주 열렸었다. 그런데, 보통 한국 같았으면, 자녀들의 성적이나 진학에 대한 이야기 (예: 어떤 학원이 좋은지 등)가 대화의 주를 이룰 것 같은데, 이 곳에서는 각 각 부모님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각자 자녀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야기가 대부분이 이었다. 레알슐레에 진학한 학생들의 부모님들도, “내 아들은 손재주가 좋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레알슐레에서 좋은 기술을 배워 멋진 사회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셨다. 성적만이 자랑이 될 수 있는 한국 학교 사회에서 자라온 나에겐, 그런 광경 하나하나가 충격이었다.
2. (핀란드 교육과 유사한) 독일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에 대한 고찰
무엇이 이런 독일 교육 시스템을 만들었을까?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종종 생각하던 토픽이다.
독일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누진세가 철저히 적용되고 있어서, 실소득 기준 각 직업의 평균 소득이 평준화 되어 있다는 점 (예: 변호사와 교사의 실소득이 비슷함),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서비스를 무료로 누릴 수 있다는 점이,자녀의 좋은 대학 진학-고스펙 전문직 취업 보다는 적성과 행복에 중점을 둔 교육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동시에, 독일은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대비 철저한 지방자치제도가 자리잡힌 국가였다. 베를린/프랑크프루트/뮌헨 등이 대형 도시이긴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있어 서울, 프랑스 인들에게 있어 파리, 미국 인들에게있어 뉴욕과는 다른 느낌의 도시들이었다. 독일은 지역 내 도시들마다 균등한 문화의 기회가 있었고, 유사한 인프라가 갖추어 있었다. 덕분에 파리-런던-로마에 익숙한 한국 관광객들은,도시마다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독일을 “볼 것 없는 국가” 라고 이야기 하곤 했지만, 독일은 여행의 관점이 아닌 생활의 관점에서는 정말 살기 좋은 국가였다. 이에 각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교가 있을 뿐, 독일 내 1등 대학 2등 대학 3등 대학 등 대학이 서열화 되지 않았다. 이러한 평등한 사회제도, 평등한 지역경제가, 독일 사람들의 교육관/직업관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 아닐까.
3. (핀란드 교육과 유사한) 독일 교육이 내 인생에 끼친 impact
아무쪼록, 당시 나는 독일 친구들이 부러웠다. 모두가 획일화된 교육을 받지 않는 수업 분위기, 숙제와 시험에 치이지 않는 삶, 등수가존재하지 않는 교실에서의 1년은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한국 초등학교의 삶은 10일 정도 기억이 날까말까 한다.하지만 독일에서의 1년은, 100일 정도는 생생에 기억이 남을 만큼, 하루하루가 즐거움과 새로운 배움의 연속이었다.
그 만큼, 학교 다니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숙제가 없으니, 수업시간에 더욱 집중하였다. 등수가 없으니, 친구들의 발표를 더욱 귀기울여 들었다 (한국에서는, 솔직히, 등수가 낮은 친구들의 발표는 안들었다;;; ㅠㅠ). 시험이 없으니, 정답 암기 보다는 원리를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다. 경쟁이 없으니, 친구들과 더 거리낌없이 지냈다. 그래서, 학교에 가는 등교길이 신났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하교길 역시 즐거웠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의 삶은 입시 중심의 교육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독일에서 매고 다니던 책가방을 놓고 있을 만큼, 그 곳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본능적으로, 그 때 그 시절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역할이 무엇일까? 그리고 교육의 역할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시절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다. 정말 필요한 초등학교 교육은, 성인이 되어서도 하루하루가 기억날 정도로 기쁨을 전해 준, 성인이 되어서도 기억에 멤도는 교훈을 알려준 교육이 아닐까?
시험을 잘 보는것이 왜 중요할까?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암기 중심 학습은, 한 아이가 행복하고 생산적인 삶을 사는데 얼마나 중요할까?
그런데 명문대가 존재하고, 좋은 직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과연 교육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서열화된 사회에서의 “적성 맞춤 교육” 은 정말 이상에 불과한 꿈인 것일까?
미국 친구들이 핀란드 교육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며, 미국 친구들의 페북에 “참 교육” 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문득 잊고살았던 독일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음 속 한 켠에 묻어 놓고 있었단 “참교육”에 대한 화두를 다시금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