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의미있는 휴식에 대하여
무엇이 지쳤는가(체력, 심력, 영혼)에 따라 다른 휴식이 필요하다
[휴식, 체력의 문제,심력의 문제,영혼의 문제]
휴식을 잘 취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보통 휴식을 많이 지쳤을 때 가졌다. 그런데 “내가 지금 왜 지쳤는가? 나의 무엇이 (몸이, 정신이, 마음이, 영혼이)힘든가?”에 따라 취해야 하는 휴식이 다름을, 예전 BCG 생활을 하며 느낀 적이 있다.
입사 초창기에, 1달 짜리 짧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답이 정해진 프로젝트였고, 정해진 답에 대한 근거 & 설득 로직을 만드는 것이 핵심인 프로젝트였다. Client 사의 오너 & 경영진이 회사 내 아주 중요한 변화 관련 의사결정을 내렸는데, 대형 기관 주주들에게 '해당 변화의 당위성'을 설득하기 위한 자료를 만드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 만큼 당시 Client 사가 추진하던 변화는, 일반 주주들이 보기에는, 단기적 관점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의사결정이었다.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는 그렇게 가야하는 것이 맞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사실 기관주주들이 반론을 제기하기 너무 쉬운 의사결정이었고, 나 스스로도 ‘정공법으로만 생각하면, Client 사가 내린 의사결정은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어려운 의사결정이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당시 파트너님께서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정공법으로 생각해도 옳다. 그러니, 단기적으로 봤을 때에도 진짜로, 진실로 옳은 의사결정임을 보여주자’ 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Survey 를 해봐도 Client 의사결정에 대한 반대의견을 support 하는 숫자들이 대다수인 상황이었기에 -_-;;; 당시 정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차라리, '정공법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떻게든 Client 를 위한 설득 논리를 만들어보자’ 라고 말씀하셨으면 스트레스를 덜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매일 순수한 의지로 밀어붙이는 그 분과 미팅을 할 때 마다,
‘이건 회사의 전략적 의사결정이지, 지금 당장의 회사가치 관점에서는 분명 좋지 않을 수 있는 의사결정이 맞는 것 같은데... 내 생각 및 대다수 전문가 의견이 틀렸나' ‘나는 긍정적일 수 있는 답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사람인가’ ‘그런데, 우리의 로직에 맞는 자료만 엄선해서 보여주는게 맞나’ ‘하지만, 꼭 진짜 정답만을 이야기 하며 살 필요는 없지 않나? 세상이 꼭 정답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매일 매일 머릿속에 가득찬 생각들 때문에, 하루는 열이 39도까지 올라갈 정도의 열받음과 스트레스를 느꼈었다.
프로젝트 종료 후, ‘아 이번엔 진짜 힘들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휴가를 내고 괌으로 향했다. 그런데 괌에서 하루를 보냈는 데에도 전혀 쉰 것 같은 느낌도 안들고, 여전히 피로하고 힘들고 괴로웠다.
그 때 불현듯 든 생각이 있어서, 휴가를 급히 취소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서 되돌아왔다. (괌에서 딱 하루 머물렀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1개를 더 마치고, 다른 곳으로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당시, 괌에서 들었던 생각 & 깨달음은,
‘아 내가 체력적으로 힘든게 아니었구나. 사실, 내 마음이 힘들었구나. 괌은 몸이 힘들 때 오는 휴양지이지, 내 지친 마음이 충전되는 곳은 아닌 것 같다’
또 다른 프로젝트가 끝나갈 때 쯤, 다시 비행기 티겟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파리에 가서 오랫만에 마음의 refresh 를 하고자 유럽행 비행기 티겟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샌프란시스코 비행기가 너무 싸게 나왔음을 발견했다. 그런데, 너무 가보고 싶다는 마음의 끌림이 있어서, 충동적으로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프로젝트 종료 후 무작정 샌프란으로 향했다.
그 때 호텔이 샌프란시스코 유니온스퀘어 근처에 있었는데, 처음에는 페리빌딩도 가보고 금문교도 건너고 소살리토도 방문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결국 휴가 중 계속 향하게 된 곳은, 샌프란시스코 중심지가 아닌 스탠포드와 산호세,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서니베일이었다.
그 당시, 무작정 실리콘밸리가 가보고 싶었다. 벤치마킹 하던 회사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했고,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첨단 지역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우버가 없었던 시기였기에,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님, 실리콘밸리 중심으로 가주세요" 라는 말도 안되는 부탁한 후, 편도 100불 정도 내고 무작정 기사님이 데려다 주는 곳으로 향했다. 당시 기사님이 내려준 곳은 Yahoo 본사 (지금의 야후 본사로 옮기기 전, 구 사옥)와 인텔 뮤지엄이 있는 써니베일이었다.
그런데, 그 곳에 도착해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을 움직이는 실리콘밸리가 이렇게 한적하고 조용하고 녹지로 가득한 곳이었다니…페이스북 근처에는 화려한 건물들 & 음식점이 즐비할 줄 알았는데, 주차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함에 놀랐다.
그런데, 한적한 실리콘밸리의 녹지를 걷는게 너무 즐겁고 뭔가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혁신은 자연과 사람을 진실로 마주할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한다"는 진리 아닌 진리가 마음에 와닿는 것 같아서 기쁘기도 했고, 그냥 이 곳이 나와 fit 이 굉장히 잘 맞음을 느꼈다. 그리고, 예전 프로젝트로 인해 느꼈던 피로감은 정말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실리콘밸리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은,
‘사람이 마음이 힘들 때, 심력이 떨어졌을 때에는, 마음이 쉴 수 있는 여행을 해야 하는것이구나' 였다.
그런데, 요즘 사업을 하면서, 가끔 아프리카나 남극같은 오지가 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진짜 오지. 태초의 자연의 모습을 한 곳으로의 여행.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체력의 문제도 심력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체력적으로는 아직 큰 문제가 없고, 마음도 즐겁기 때문에.
그런데, 영혼적으로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으로 계속 밀고나가는 나의 일관성에 나 스스로 지친다’ 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지금 이 시점은, 하던 방식대로 계속 잘 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 쯤은 잠시 멈춰서서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럴 때 문득, 세계테마여행 (EBS 에서 하는) 에서 잠시 문득문득 보았던 남극이나 아프리카가 마음 속에 떠오르고, 그런 곳에 가면 정말 그 동안 살아오며 배운 교훈/로직을 다 무시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사업-나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런 니즈는 영혼의 고민에서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결국, 휴식이라는 것, 그리고 휴가라는 것은,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라기 보다는, 내가 왜 힘든지, 어떤 휴식이 필요한지 명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장소와 테마를 선택해야 진짜 휴식으로 이어짐을 느꼈다.
체력적 힘듬, 심력의 방전, 영혼적 번뇌...
살면서 끊없이 마주하는 어려움들이다. 내가 어떤 어려움에 마주하느냐에 따라 취해야 하는 휴식은 다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