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가 좋은 이유
내가 별거 아닌 존재여서 더 좋다.
2014년 스탠포드 MBA에 와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이 곳에서는 내가, 그리고 Professional firm 경력 가진 사람들이, 진짜 별 거 아닌 잉여 존재다' 라는 부분이었다.
대학교 재학 시, 그리고 대학교 졸업 후, 한창 내 자존감을 찾기 위해 1) 좋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노력했고, 2) 그 안에서 더 빨리 승진하기 위해 목메는 삶을 살고 있던 나에게,
'네가 얼마나 인정받는 회사 출신인지? 네가 그 회사에서 얼만큼 빨리 승진했는지? 그런거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아. 너는 나름 열심히 살아온 한 사람일 뿐이고, Maker 들이 새로움을 창출하는 곳에서 그들을 support 할 수도 있는 사람일 뿐이야'
라 이야기 하는 것 같은 이 곳의 분위기가 역설적으로 매우 좋았다.
당시 스탠포드에서는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MBA 생들이 가장 실리콘밸리에서의 존재가치(?)가 떨어졌는데, 스탠포드 공대생들에게 어떻게든 이력서 받으려고 노력하는 수 많은 tech 회사들의 HR 이 MBA 학생들의 이력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으려는 분위기 속에서 (또는 MBA 생인데, 학부 전공이 engineer 인지 확인하는 분위기 안에서),
'우리는 이 곳에서는 별 것 아닌 존재다. 더 내려갈 곳도 없고, 내 과거 경력으로 더 세울것도 없다. 내가 진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진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진짜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나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있을지 & 그들을 찾으려면 오늘 당장 누구부터 만나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하루하루 사는 것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뿐이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헝그리한 마인드셋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나가서 깨지고 힘들 때 주변 친구들끼리 위로하고 격려하며 힘을 얻는 과정이 참 좋았다.
그 과정에서 경력을 앞세우며 자기소개 하던 과거의 나는 사라지고, 불완전하지만 나름 소중한 존재인 진짜 '나'를 드러내며 소통하는 현재의 나를 찾을 수 있게 된 듯 하다.
그리고, 그 환경에서 거주하며 일하고 꿈꾸며 제품을 만들고 유저를 만나는 과정이 참 좋다. 사람을 위한 서비스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의미있고 즐겁다.
그래서 나는 이 곳을 참 좋아한다. 내가 별 것도 아닌 존재인 곳. 그래서 내가 나다울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는 곳. 내가 화려한 경력을 갖췄기에 소통이 시작되는 곳이 아닌, 내가 나다울 수 있을 때 소통이 시작될 수 있는 곳.
10여년 전과는 살짝 분위기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실리콘밸리가 여전히 좋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