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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Hoon Lee Mar 10. 2024

신의 한 수 (제 4국, 78수)

주말에 신진서 9단이 나오는 유퀴즈 보다가, 급 이세돌 9단와 알파고 간 세기의 바둑 대전을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는 과정에서 '스타트업하는 사람 관점'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이세돌 9단의 제 4국 78수는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 중요한 수이다. 사람들이 1~3국에서 'AI(알파고)의 완전무결한 기량'에 무력감/패배감을 느낄때 쯤, 이세돌 9단의 제 4국 78수로 인해 AI가 당황하고 우왕자왕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사람은 (아직까지는) 존엄하고 위대해' 라는 희망을 볼 수 있었던 수이다. 그리고, 제 4국 종료 후 "신의 한 수였던 78수를 어떻게 고안해냈는지?"라는 기자의 질문에 "수가 보이지 않아 7~8분 고민했는데, 당시에는 그 수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수가 신의 한 수가 될지는 몰랐습니다"라고 답변한 이세돌 9단의 인터뷰는 큰 감동을 주기도 했고, 구글 엔지니어들이 제 4국 패배 후 경기를 복귀하는 과정에서 '그 수는 과거 어떤 기사도 두지 않았던 (알파고도 생각할 수 없었던) 신의 한 수가 맞았다' 라 마하며 감탄하던 장면 역시 큰 감동을 주었다.


맥락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Ringle 시작 후 많은 제약 (예산/인력/경험 등이 충분하지 못한 제약 & '잠시 놀고 쉬고 싶은' 사람의 본성을 거슬러 유저를 찾아야 하는 제약 등)을 뚫어낼 수 있는 '신의 한 수'를 찾기 위해, 숱한 실패 속에서도 탐색/실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거대한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시작한 스타트업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규모/영향력이 작아 휩쓸려 갈 수밖에 없는 (승리보다 실패가 압도적으로 많은) 하루하루 속에서, 역경을 뚫고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신의 한 수'를 찾아내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 버티고 버티며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지난 한 해 Ringle에 있어 신의 한 수는 있었을까?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도 떠오르는 한 수가 있었다. 2023년 Ringle Teens (초/중등을 위한 1:1 화상영어) 출시 초반, Product-Customer-Fit 에 맞는 유저 (입시 영어가 아닌, 10대 아이들이 영어를 즐겁게 구사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결론적으로 writing/speaking 실력을 높여줄 수 있는 서비스 제공)를 찾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던 시기가 있었다. '링글이 10대에게는 안통하나? 입시로 틀어야 하나?'라는 내부 고민이 생길때 쯤, 다른 팀에서 다른 일을 하던 3~4명의 팀원을 급히 모시고 와 TF를 새로이 정비하고, '전략적 고민은 잠시 멈추고, 2016년 링글 초창기 때처럼 play 해보자' 기조를 세운 후, 낮에는 발로 뛰며 유저를 만나고, 늦은 오후에 다함께 매일 모여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모의하는 2달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이 하루하루 실행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부터 목표 이상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며 '반전의 하반기'를 보낼 수 있었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던 시기에 '새로운 분들을 모셔야겠다' 결정 내렸던 이유는, 1) 그 때는 그 수밖에 보이지 않았었고, 2) 설령 잘 안되도 그렇게 해서 안되면 후회라도 없겠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023년 링글의 신의 한 수를 떠올리다 보니, 신의 한 수에 대해 떠오르는 랜덤한 생각들이 있었다. 정리해 보자면...


1. 입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챌린지를 뚫어내기 어렵다. 될 것 같은 아이디어도, '과연 될까? 안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업체들은 해서 되었나? 안된 업체는 왜 안되었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그나마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탐구/탐색/실험하며 답을 찾아가야 한다. 


2. 특히, 사람을 봐야 한다.


우리 회사만 있는 유니크한 자원은 '사람'이다. 그리고, 팀의 실행으로부터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 '사람'을 봐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clue 는 '팀'이라는 사람들의 조합에 있다. 


더불어, 팀이 '유저'를 만나면 유저의 문제가 보이고, 유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보인다. '유저'와 '팀' 이라는 '사람' & '사람'을 보면, 어렴풋한 희망이 보일 때가 있는데,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3. 신의 한 수로 여겨지는 initiative 실행 시, 다음 수를 항시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팀이 신의 한 수라 생각해서 실행한 패가 있다면, 그 패가 통하고 있는지 매일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신의 한 수일지도 모른다는 조짐이 보이면 더 과감하게 밀어 붙이고, 오히려 악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조짐이 보이면 빠르게 다음 수를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 


4. 신의 한 수는 계속 이어지지 않음을. (이세돌 9단이 4국 승리 후 5국에서는 패했던 것처럼) 인지해야 한다. 


어제의 신의 한 수는 오늘의 신의 한 수가 아닐 때가 많다. 성공했던 수에 묶여 있기 보다는, 어제 성공이 오늘 실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안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고민하며 zero-base 에서 탐색해 나가야 한다. 


5. 신의 한 수를 경험한 사람들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어려움 속에서 '신의 한 수'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른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처음에는 헤매겠지만, 이번에도 신의 한 수가 있을 것이고,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찾게 되어있으니, 일단 해보자' 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그 상황에 뛰어 들어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신의 한 수를 경험한 더 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신의 한 수는 결국 신의 한 수를 경험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6. 신의 한 수는 평범한 수가 아니다.


적어도 9년 간 Ringle 하며 몇 번 경험했던 신의 한 수는 평범한 수는 절대 아니었다. 이해가 안되는 수 일때도 있었고,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의 수 일때도 있었다. 오늘의 평범한(적당한) 승리는 훗날 큰 패배의 서막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진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위기의식 하에서 '쥐어짜고 쥐어짜내는 과정'을 통해 나온 수여야 한다.


2024년에도 Ringle은 또 다른 신의 한 수를 준비하고 있다. 꼭 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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