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BCG 시절, 대기업들을 보며 '대표이사에게 직보(또는 독대)할 수 있는 사람에게 곧 엄청난 권력이 임하는구나' 생각했던 적이 많다.
실제로 client 분들로부터 '저 임원 분은 회장님이 독대하는 5명 중 한 명이에요'라는 이야기를 들은적도 있었고, 그 임원 분의 기세등등함(?)을 느껴본 적도 있었다.
의사결정권자에게 직보하고 거기에 독대까지 한다는 것은, 그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대화를 다방면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고, 결국 의사결정권자에게 주위/주변 눈치 보지 않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사내에서는 그 만큼 상징적 의미가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항상 뒤이어 따라붙었던 이야기는 '저 사람에게 찍히면 안돼. 저 사람에게 나쁘게 보여서 좋을 것이 없어. 저 사람과 사이 안좋던 사람들 많이 나갔어' 등등이었다.
그런데, 직보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사례를 더 많이 여럿 보았다. 좋지 않은 의미의 사내 정치의 출발점이기도 했고, 줄서기/담합의 시작점이기도 했으며, 비효율이 양상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링글은 아직 작은 규모의 회사여서 보고 체계라는 표현이 들어서기 전이기도 하고, 사내 정치 등이 형성되지 않은 조직이긴 하지만, '회사 규모가 작을 때부터 직보를 건전하고 투명하게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Ringle 팀은 '모두가 모두에게 직보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Daily Review 라는 섹션에 있는데, 각자가 했던 업무 중 모두가 알면 좋을 내용을 15분 내로 짧게 작성하여 Daily Review 에 올리는 공유 문화가 있다. 내가 한 일을 내 입으로 내 손으로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데, 그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나 역시도 매일 매일 Daily Review 에 작성하고 있다. 리더십을 통해 각 팀원에게 전파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규모에서는 나 역시도 모든 팀에게 '오늘 했던 고민, 오늘 나만의 시사점, 오늘 의미있었던 일' 등등에 대해 직접 전파하는 것이 더 편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전파가 오해와 혼선을 낳으면 안되겠지만, 그래서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아직 논의 중인 일'에 대해서는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모두가 모두에게 직보하는 체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더더더 많아지는 상황에서도, 최대한 모두가 모두에게 내 생각, 내가 느낀 시사점을 직접 전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 공유가 '예의'와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 하에, 내 지식이 전체 조직의 지식이 될 수 있는 '집단 지성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직보가 나쁜 의미의 정치와 비효율의 시작이 되는 의미가 아닌, 내 자산을 모두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 시너지의 시작이 될 수 있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