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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Hoon Lee Sep 17. 2019

모든것이 기록되지 않던 세상에 대한 그리움

나름(?) 아날로그 세대의, 디지털 세대에 대한 웃픈 푸념 



최근 링글 교재를 하나 썼다. '모든것이 기록되는 세상에의 implication' 




요즘 세상은 나의 다양한 활동이 기록되어 저장되는 시기인데, 더 정확해지고 효율적이고 안전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신종 범죄도 생기고, 또 그 만큼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면서 성장하게 되는데 그 실수마저도 기록되어 결국 지워버릴 수 없는 흔적이 되어버리는 사회.




우연히 본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며, 이 때가 참 그립기도 하다 생각하며 쓴 교재였다.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은 것은 맨 뒤 페이지의 주소록/연락처 때문이었다. 졸업앨범을 받았을 때 가장 소중한 페이지였다. 함께 초등학교 졸업한 친구들의 연락처를 저장해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는 이 연락처가 친구들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보통 집에 전화하면 어머님들이 받으시기 때문에 전화 없이도 만날 수 없도록 시간/장소에 대한 약속을 확실히 하고 만나거나, 어머님을 경유해서 연락을 하던 rㅡ런 시기였다.




중학교 때 나름 큰 변화가 생긴 것은 PC 통신의 등장과 삐삐 때문이었다.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유니텔, 전화선을 경유한 파란 화면의 가상공간에서는 아이디를 알면 쉽게 연락할 수 있었고, 같은 학교 &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새로운 친구와 대화할 수 있는 신박한 세계였다. 삐삐는 친구집에 전화해서 어머니를 경유하지 않아도 친구와 연락이 닿을 수 있는, 나름 녹음 메세지를 남기는 재미와 숫자로 직관적 메세지를 전할 수 있는 재밌는 기계였다. 모든 친구들이 PC 통신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삐삐를 가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제한적 연결의 세상이었지만, 나름 재밌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이 기록되지는 않았던, 결국 대화와 나의 활동은 휘발되어버리는 그런 세상이었다.




고등학교 때에, 슬픈일이 하나 발생했다면, PC 통신이 인터넷이라는 곳에 대체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인터넷은 PC 통신보다는 재미없었다. PC 통신은 아이디를 아는 사람들 간의 서로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는 세상이었다면,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아닌 정말 거대한 가상세계였기 때문이었다. PC 통신에서 구축된 우리만의 세상이 지워지는 느낌이었다.그래도, 친구들과의 연결은 MSN 메신저가 대체했고, 친구들과의 연락은 한메일을 필두로 한 이메일이 대신하게 되었다 (나름 한메일 보다는 핫메일이 멋져 보여서, hotmail 계정을 이용했던 기억이..) 그리고 삐삐는 휴대폰으로 대체되고, 이상한 숫자암호는 text 문자로 대체되었다. 연락은 쉬워졌지만, 재미와 낭만은 조금은 반감된 느낌이었다. 편리해졌지만, 덜 재밌어진.상상과 기다림과 단절은 인간적 재미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일지로 모르는다는 생각이 급 든다. 아! 그래도 다모임과 아이러브스쿨은 잊고 지냈던 초등학교 동창을 다시 만나게 해준 '우리 모두의 TV 는 사랑의 싣고' 같은 서비스였지만, 인기를 얻은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던 기억이! 아무쪼록, 이 때 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기록되고, 내 기록에 의해 비즈니스가 생성되고 서비스가 정교해지는 세상은 아니었다.




대학교 초반기는, 싸이월드와 프리챌의 세상이었다. 내 공간을 꾸민다는 것, 1촌들이 연결된다는 것, 프리챌이라는 공간에서 community 활동을 기록해 나간다는 것 자체가 PC 통신 시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현실세계에서 지내는 시간 만큼 가상세계에 시간을 들이게 된 첫 시기였기도 하고, 가상세계를 꾸미기 위해 현질(?)을 시작한 첫 시기였기도하다. 이 때 까지는 모바일이라는 세상은 없었다. 핸드폰은 벨소리 화음이 다양해지기 시작하고, 문자판이 컬러로 변하기 시작하고, 스티커 사진 정도를 찍을 수 있는 사진기가 나오기 시작한, 하지만 스마트폰 세상의 도래는 아니었다. 내가 쓴 문자는 결국 사라지고, 내가 쓴 글들은 비공개-1촌공개-전체공개를 통해 공개범위를 결정하는 재미는 있었지만, 그 글을 시스템이 이해하고 맞춤 추천을 해주는 시기는 아니었다. 이 때는 그리고 야후를 위시로 한 포털의 시대였던 것 같다. 검색 보다는, 포털사가 보여주고 싶은 정보를 편집해서 보여주는, 정보의 요람같던 포털의 시대.




다만,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부터, 페이스북과 프리챌은 폭망하고, 페이스북과 구글과 지메일이 그 자리를 대체한 시대가 찾아왔던 것 같다. 나만의 공간을 전제로 한 제한적 공유가 아닌, 연결을 중심으로 한 공간의 탄생. 포털이 아닌 검색의 시작. 무한 저장공간을 제공해 줄 것 같던 이메일의 탄생. 싸이월드와 프리챌의 폭망은 또 한 번 그 동안 연결되었던 나만의 / 우리만의 공간을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하고, 내 친구들과 헤어지게 하는 순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그렇게 사라질 수 있는 다분히 인간적인 시대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취업을 하고, 그 유명한 모 컨설팅 회사의 '스마트폰 시대는 오지 않습니다' 보고서를, 스티브잡스 형님이 아이폰으로 쓰레기를 만들어버린 시대가 와서, MSN 은 카톡으로 대체되고, 정말 휴대 가능한 PC 의 시대가 도래하였는데, 사실 이 때부터 내 눈과 시간은 현실세계 보다는 가상세계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성, 그리고 내가 남긴 기록이 나에게 정확한 추천으로 돌아오는 시대가 열렸던 것 같다. 공짜 서비스가 범람하고 (검색도 공짜, 이메일도 공짜, 캘린더도 공짜, 맵도 공짜), 데이터가 넘쳐나고, 빅데이터라는 개념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머신러닝이라는 것이 튀어나오고, 영화에서만 보던 AI 가 내 삶에서 목도되는 세상이 정말 삽시간에 왔다. 내 모든 기록이 저장되고, 내 개인정보도 검색창에 치면 꽤 많은 기록이 나오는, 정말 예전에는 유명한 사람들이나 검색하면 관련 정보가 제한적으로 나왔는데, 이제는 누구나 인터넷/모바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관련 정보가 나오는 그런 세상. 일반인도 방송을 하고, 일반인도 주목을 받고, 정보가 더 민주화되고, 세상이 더 안전해지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내 모든 순간이 기록화되고, 내 실수도 기록으로 남고, 지우고 싶어도 기록을 지울 수 없는, 어찌보면 비인간적일 수도 있고 각박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소액의 가격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 서비스에 대한 광고를 할 수 있는 엄청난 혜택을 주는 세상이기도 하지만, 내 인생을 살면서 가장 많은 상업적이고 의도를 다분히 가진 정보를 습득받는 시대이기도 한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너무나 효율적으로 변해가는 세상, 나에게 정확한 것만 추천해주는 세상, 값진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세상, 모든 것이 기록되기에 더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만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상하게 나의 마음과 머리는, 비효율적이었어도, 덜 과학적이었어도,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친해지고, 기다림이 당연한 시기에 기다림이 만들어주는 설레임/초조함/망연자실 등 부가 감정에 울고 웃던 그 시기를 그리워 한다는 것을.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EBS 를 통해 과거 명작을 보며, 옛 음악을 들으며 마주하는 감정의 본질은, 모든것이 기록되지 않고 연결되지 않은 시대에 연결되기 위해, 기록을 찾기위해 노력하던 그 시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추석에 EBS 에서 우연히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인 쇼생크 탈출을 다시 보며 감격에 빠졌었는데, 쇼생크 탈출에서 40년 이상을 감옥에서 살다가 모범수로 풀려난 모건 프리먼이 했던 대사 중 하나는 '40년 만에 다시 나온 세상에서 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도 익숙한 감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죄를 나를 지을 순 없어서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였다. 정말 다른 이야기지만, 지금 내가 40살이 안되었는데, 지난  40년이라는 세상이 이 세계에 만들어놓은 변화는 정말 어마어마한데, 앞으로의 40년은 얼마나 더 변할지... 겁이 날 정도이다. 




세상의 빠른 변화가 다양한 장점과 단점을 만들어내고, 편리함과 그리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느끼게 하는데,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또 변화해 나갈지,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더 빠르게 변화할텐고 나의 뇌와 몸은 더 느리게 반응할텐데, 나는 30년 뒤에 어떤 존재로 살아갈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는 순간에 서 있다.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더 진화되는 세상 속에서도, 인간다움이 주는 멋과 아름다움을 즐기며 추구하는 사람이길 희망한다. 여유를 느끼고, 여행을 즐기고, 친구와 교제를 좋아하고, 가족을 사랑하며, 세상을 향한 긍정의 에너지를 말할 수 있고 또 말할 수 없을때는 받아들이고 수긍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다보니 매우 긴 글이 되었는데, 모든 것이 기록되고 분석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나름 아날로그 대를 살았던 사람의 일종의 푸념이라 생각하고 빨리 잠이나 자야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마친다.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생각하며, 길고도 긴 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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