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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hwan Connor Jeon Feb 02. 2023

서울, 중국, 그리고 미국 - 29

우울한 나날들

2004년 봄.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한 달간 한인타운에 살고 계시던 장모님 댁에서 신세를 졌다. 한 달 뒤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떨어진 곳에 집을 구했다. 사막 한가운데 개발된 이 도시 여기저기에는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황무지 땅이 듬성듬성 보였다. 큰 고속도로의 서쪽에는 신시가지가 있었고 동쪽에는 구시가지가 있었다. 구시가지는 집값은 저렴했지만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 있어서 조금 더 비싸더라도 서쪽의 신시가지에 집을 구입했다. 


2004년 당시 미국의 부동산은 활황기에 접어든 상태였고 신용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은행에서 융자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모은 돈과 퇴직금을 모두 털어 넣어 downpay를 하고 나머지는 은행으로부터 변동금리로 융자를 받아 꽤 큰 집을 구입할 수 있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 구입한 이 집은 2007년부터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집값이 구입한 금액 이하로 떨어졌고 금리 상승까지 겹치며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모두 날리게 된 애물단지가 되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교사자격증은 미국의 교직과정을 이수하는 데 있어서 몇 개의 과정을 생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 자격증과 경력을 통해 임시 교사 자격증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교직을 얻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일단은 영어가 안 됐다. 사실 한국에서 영어 전담도 하고 영어 캠프도 기획하고 다양한 영어 관련 연수를 받기도 해서 내가 영어를 아주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실수를 잘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여러 환경에서 부담 없이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웠다.


서류정리와 동네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앞으로 있을 교직과정 이수에 필요한 과목들을 이수하면서 1년 반의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수 없이 한국의 교실이 생각났고 아이들이 그리웠다. 설사 이 모든 절차를 마무리한 후 교직과정을 이수하고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해도 성공적으로 교단에 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고 높아 보였다. 


미국에 들어온 지 1년 반 정도가 지났을 때쯤 일단 보조교사는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던 곳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변두리에 위치한 교육청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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