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반 학생 A는 1학년인데도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학생 B는 이미 3, 4학년의 읽기 레벨이어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교과서로는 이 아이의 학업발달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요. 이 학생들에게 똑같은 교육과정이 적용하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요?
한국에서 교사로 근무했을 때 매주마다 주간학습계획서를 제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는 컴퓨터가 학교에 처음 보급 되었을 때라 많은 선배 선생님들은 컴퓨터를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셨지요. 초임이었던 나는 동학년의 모든 선생님들께 제가 만든 주간학습계획서를 프린트해서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독수리 타법으로 힘들게 계획서를 매주마다 제출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거예요. 그렇다고 모든 학급의 학습 계획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한국의 교실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을 배우니 별 문제가 없었지요.
미국에서는 교육구마다, 또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현재 제가 근무하고 있는 LA 교육구에서는 주간 학습계획이나 매일의 lesson plan을 제출하지는 않아요. 수업을 어떻게 준비하는가 하는 부분은 각 교사의 직업윤리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지요. 어떤 학교들은 제출을 하지 않지만 교사 책상 위에 매우 간략하게 정리된 일주일간의 lesson plan을 펼쳐 두기도 합니다. 교장선생님이 교실을 방문하면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미국의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힘을 들었을 때가 어쩌면 교육과정을 직접 편성하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진도계획을 짜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거든요. 일단 학교 전체 교사들이 모여서 일 년 동안 학교의 전 학년이 배울 6가지 정도의 큰 주제를 정하고 이 주제에 맞추어 학년별로 모여서 2-3가지 종류의 방대한 교재를 참조하여 평가를 포함한 교수-학습계획을 만들었습니다. 고려해야 할 자료의 양이 매우 방대했고, 교육과정개발의 전문적인 훈련도 받지 않은 교사들이 수행하기에는 이 과정이 매우 어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사들은 이 일을 위해서 개학을 하기 일주일 전에 3일 동안 학교에 출근해서 이 업무를 하였고 학기 중에도 당시의 상황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다듬는 작업을 해야 했어요.
지금은 교육과정을 통째로 만드는 것과 같은 업무는 하지 않아요. 사실 이러한 일을 해야 했던 배경에는 당시 우리 학교의 학교 운영 방향 때문이었어요. 당시 우리 학교는 Thematic Driven Project Based Learning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학교 설립 취지에 맞추어 모든 교육과정을 주제에 맞게 다시 만드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었지요. 힘들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비 효율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이 작업을 지금은 하지 않지만 이 경험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어요. 이 과정을 통해서 초등 과정 전체를 보는 눈도 길러졌을 뿐 아니라 다음 학년의 내용을 함께 다루면서 내가 올해에 가르쳐야 하는 교육목표와 내용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가 생기기도 했거든요.
위와 같이 일 년 동안의 교육과정을 통째로 분해해서 다시 조립하는 작업을 이제는 하지는 않지만 사실 하나의 교육과정에 모든 학생을 맞추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요. 가뜩이나 넓은 미국은 각 주에 따라, 도시에 따라,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의 다양성이 존재하므로 이들을 고려하여 교육과정을 재편하는 것은 물론, 교실의 각 학생들의 저마다의 필요는 그 학생에 맞춘 교육과정의 조정이 불가피하겠지요. 어쩌면 내 교실의 학생 숫자만큼의 교육과정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이 아이는 저 아이와 너무나 다르니까요.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개별화 교육, 수준별 소그룹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평가와 평가의 분석, 결과에 따른 적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답니다. 아래에 첨부한 도표는 교육과정 개발이나 전반적인 학급운영에 대한 계획과 평가를 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이외에도 아주 많은 도구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