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립학교, 미국 공립학교 이야기
11년. 좀 길다고 느낀 적은 있었지만 미국이라는 이국땅에서 살아낸 기간을 세어 보며 새삼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 화들짝 놀란다. 나와는 다른 언어, 다른 문화의 학생들과 함께 한 지도 그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서울시 동부교육청 장학사와 휴직 가능 여부에 대해 문의할 때만 해도 미국에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이 아니었다. 휴직이 가능했다면 한 2, 3년쯤 있다 한국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휴직이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직을 결심하면서도 미국은 한 번 거쳐갈 나라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중국 소재 한국 국제학교에서의 경험이 별로 길지 않아서 왠지 이 부분을 미완성으로 남겨 두는 것 같아 한국을 떠나면서도 기분이 상쾌하지 만은 않았다.
미국에 와서 든 생각은 미국 땅에서 초등학교 교사는 나와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름지기 초등학교 시절은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회 전반에 대한 기본을 배워야 하는 과정이라 그 사회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맡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신나고 자신 있게 교직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도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교사로서의 기본인 이 부분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 느꼈던 혼란과 내적 갈등은 내가 이런 기본을 가지지 못했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이런 것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 시간을 몸으로 체득하지 않는 이상 습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교실에서 아이들과 교사들을 보면서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이 아이들에게 같은 피부색의 교사들이 줄 수 없는 다른 중요한 것들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피부색이나 같은 언어가 아닐 지언정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사는 같은 언어로 깊은 상처를 주는 교사보다는 어눌한 언어일 지라도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며 같은 눈높이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교사라는 생각, 내가 부족하고 습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그 "기본"이라는 것도 경험에 의해서만 습득 될 수 있는 독특한 성질의 것이라기 보다는 훨씬 더 크고 포괄적인 "인간됨"이라는 생각은 결국 나를 천직인 교직에 다시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미국행 비행기 속에서 미국에서 교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교직과정을 다시 이수하고, 교사 자격증을 다시 취득하고, 한국과 다른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고 가르칠 정도가 되는 것은 또 다른 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에 견줄 만한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아직 이 출산과 성장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사뭇 다른 이곳의 시스템과 문화는 나에게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시행착오와 함께 가슴 뿌듯한 보람을 주기도 했다.
이 공간에 한국 공립교육과 미국 공립교육에 몸 담았던 지난 시간들을 틈틈이 정리해 두었던 생각과 사진들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교사로서 내가 시도했던 다양한 경험들을 정리하는 일은 매일 바쁜 일상을 살아 내야하는 나에게는 또 다른 내일을 제시해 줄 뿐 아니라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