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교 교사들은 새 학기를 방학 중에 준비한다.
매년마다 여름방학을 보내면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짧은 여름휴가마저 여의치 않은 많은 직업인들에게 교사들의 긴 방학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교사들에게 방학은 단순한 휴가가 아닌 다음 학기, 다음 학년을 준비하는 매우 필수적이고도 중요한 시간이다. 알차게 보낸 방학이 없이 다음 학기를 성공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로 보인다. 학기 도중에는 감당해야 하는 매일매일의 수많은 일들과 매시간 함께 씨름하고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로 인해서 창의적이고 말랑말랑 해야 할 교사의 뇌는 단단하게 굳어버린 채 매일, 매시에 주어진 일과를 의무적이거나 사무적으로 이끌어가는 것도 버거울 때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사에게서 수업 전반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성실한 준비로 학생들의 뇌와 감정을 자극해 신나고 의미 있는 수업활동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15년 전 한국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보냈던 몇 번의 방학은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적지 않은 시간을 종교 행사로 보내고 자발적인, 또는 필수적인, 실제 수업 현장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교사 연수 그리고 당직 등을 하며 그리 길지도 않은 방학을 정신없이 보냈다. 내가 다음 학년에 가르칠 학년을 미리 알고 있다면 방학 동안 그와 관련한 연수나 자기계발에 노력을 쏟을 수 있었겠지만 정작 내가 다음 학년에 가르칠 반은 방학중에는 배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를 준비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저 교사로서 "기본소양을 닦는" 활동들을 하거나 학기중에 소홀했던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을 갖는 것 외에 별다른 준비를 할 수는 없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미국의 학교들은 한국과는 달리 여름방학을 시작하기 이전에 반편성을 끝내고 다음 학년에 어떤 반을 가르치게 될지 정해진 상태에서 여름방학을 시작한다. 아직 입학 지원이 끝나지 않은 유치부 학생들을 제외한 1학년부터 5학년을 담당할 교사들은 여름방학중에라도 자신들이 다음 학기에 가르칠 학생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방학 동안 교사들은 다음 학기에 가르치게 될 학년에 대해서 깊이 있게 연구하거나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한 다양한 연수에 참가할 수 있어서 다음 학년을 준비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교사들은 다음 학년에 가르칠 학생들에 대한 정보도 교육청 서버를 통해서 방학 동안 열람이 가능하기 때문에 학생 개인의 필요를 적극적으로 조사할 수도 있고 이는 학급운영과 학생들의 필요에 따른 개별화 학습을 준비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개학을 앞두고 적지 않은 교사들이 미리 자신의 교실에서 새학기를 준비하는 모습은 이곳에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방학은 사회가 교사들에게 허락한 더 나은 질의 교육을 위한 배려이며 학생들에게는 더 넓은 세상을 깊이 있게 경험하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방학 마저도 긴 시간 학원에서 보내야 하는 다수의 한국의 학생들이 안타깝다. 교사들도 학생들도 10개월 여에 이르는 새로운 학년으로의 긴 여정을 제대로 즐길 의무와 권리가 있다. 방학은 교사들이 이 축제를 준비할 수 있는 필수적인 시간이다. 그러하기에 방학이 보다 나은 수업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 위해서는 반편성 및 배정의 시기 조정과 같은 학사업무와 관련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새학기, 배움을 갈구하는 반짝이는 눈망울 들에게 알찬 방학을 보낸 준비된 교사와 함께하는 것 보다 더 나은 새학기 선물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