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학생의 꿈을 실현시키는 조력자
아들이 좋아하는 책 중에 Captain Underpants라는 시리즈 물이 있다. 미국에서 밀리언 셀러인 이 시리즈는 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황당한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인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교사들은 주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고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국이라면 이러한 내용으로 책이 출판이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책의 말미에는 저자의 어릴 적 사진과 간단한 소개가 나와 있는데 그 내용은 어릴 적 저자는 ADHD에다가 선생님의 말을 잘 안 들어서 수업 중에 복도 밖에 쫓겨나곤 했다는 일화와 함께 저학년 때의 한 담임은 그리기를 좋아하는 저자에게 이런 쓸데없는 짓을 계속하면 커서 밥벌이를 못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까지 실려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자는 어릴 때 꾸지람을 듣게 만들었던 그 황당한 이야기 만들기와 그림 그리기로 밀리언셀러 작가가 됐다는 것인데 어쩌면 책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묘사된 교사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 그가 겪었던 실망스러운 학창 시절에 대한 그만의 방식의 유쾌한 복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가 말썽을 피우고 말을 듣지 않아서 교사들로부터 정서적, 언어적 폭력을 당하긴 했지만 이는 나와 나의 친구들이 학창 시절 겪었던 폭력들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것들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때와 고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으로부터 뺨을 십 수 차례 맞은 적이 있었다. 두 번 모두 선생님들께서 오해하신 부분이 있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에 다가 당시 시대가 그러해서 별 대꾸도 못하고 그렇게 지나갔었다. 80년대, 한국에서 학생이 학교에 가서 맞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고 선생님께 맞았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웠기 때문에 부모님을 비롯한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상황과 느낌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당시 누구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그 기억이 내게는 작지 않은 생채기로 남았음을 반증하는 것일 것이다.
1999년, 서울에서 교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체벌금지 없었고 나 자신도 그렇게 학교에서 맞고 자랐기 때문인지 나도 나의 학생들에게 그렇게도 무심하게 매를 들곤 했었다. 심지어는 초임 교사인 내게 선배 교사들은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을 체벌해 달라며 내 교실로 보내기까지 했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이었을까, 미국의 교실에서 경험했던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매우 새로웠다. 무조건 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교사도, 이를 받아들일 학생도 없었다. 교사와 학생은 동등한 입장에서 각자의 맡은 역할에 충실하는 느낌이었다. 특별히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업과 학교에서의 원활한 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조력자의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국은 워낙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모여 사는 것이라 이곳 역시도 학교 내의 다양항 형태의 폭력에 대해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느끼는 부분은 폭력이 대한 개념 자체가 한국과 매우 다르고 이를 대처하는 사회적 합의나 학교에서 적용되고 있는 규칙의 엄정함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실제로 겪었던 사례가 있었는데, 새롭게 임용된 교사가 학생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문을 발로 찼다는 이유로 해고된 적이 있고 또 다른 교사는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책으로 책상을 내리 쳤다는 이유로 해고가 된 적도 있다. 두 건 모두 학부모가 교장에게 연락하고 관련된 학생들의 증언을 통해 결론이 내려졌다. 두 번의 사례 모두 교사와 학생 간의 신체적 접촉조차 없었지만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입었을 충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한국이라면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는 것이 가능했을까? 해당 교사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성범죄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당사자의 수치심과 관련이 있듯 미국 교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유형의 폭력의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도 학생들이 교사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 되는 것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성적과 행동을 변화시키다는 미명아래,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체의 행위는 폭력 이외의 다른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폭력은 때로는 언어로, 때로는 상황으로 학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어떤 이들은 학생들을 때려서라도 바로 잡는 것이 참 교사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잘못을 행한 학생에게 매를 들어서 벌을 주는 것 또한 교사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학생들을 숭고한 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순간 이 모든 폭력들이 얼마나 어이없는 행위인지 깨달을 것이다. 학교에서 행해지는 신체적, 언어적, 상황적 폭력이라는 수단을 철저히 내려놓고 한 개인이 자신들의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도록 도움을 주는 조력자로서의 교사로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교사는 이에 맞추어 본인들의 역할을 재 정립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를 시작하기 위한 첫 발걸음은 어떠한 형태의 폭력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와 이를 확실하게 시행할 수 있는 강력한 규칙을 교사와 학교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의 결과로 학교 내 여러 형태의 폭력들은 교사나 학교의 선택지에서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이를 대체하여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될 것이다.
이유가 어떠하든 정당한 폭력은 없다. 교사는 학생들의 꿈을 끌어내는 조력자 그 이상도 이하도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