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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Jan 26. 2019

단풍 속 피투성이의 죽음을 그리며

<취미 있는 인생>을 읽고

에세이는 소설보다 더 강하게 작가의 색깔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상한(?) 작가일수록 더 재미있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이상하다는 게 꼭 나쁜 의미인 것은 아니고.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마루야마 겐지는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와 조선일보 인터뷰를 읽고서 이미 범상치 않은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시골 생활의 단점을 알려주는 책에서, “시골에서는 언제 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므로 집에 무기를 준비해 두어야 하며, 무기로는 죽창이 좋다”는 충고를 진지하게 하는 사람인 것이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또한 만만치 않다. “노부부만 사는 집이어서일까. 실내 엘리베이터가 있다. 하지만 그는 3층 버튼을 누른 뒤 손님만 밀어 넣었고, 쿵쾅쿵쾅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자 팔뚝에 힘줄이 불끈 솟은 작가가 객을 맞았다.” 이런 사람인 것이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 실렸던 마루야마 겐지의 사진



<취미 있는 인생>은 말 그대로 마루야마 겐지의 취미에 대한 이야기인데, 기대 없이 봤다가 정말 깔깔 웃었다. 근데 이게 작가가 유머를 발휘해서 웃기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는 한없이 진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마루야마 겐지스러운 점이 재미있다.

이를테면 취미랍시고 즐기는 행동이 하나같이 몹시 ‘마초’적인 것들이다. 샌드백 때리기, 칼 던지기, 오토바이, 오프로드, 낚시 기타 등등. 게다가 소제목에서 느껴지는 기세 역시 아주 대단하다. <거친 학창 시절과 나의 잭나이프> <웬만한 총은 다루어보았다> <때까치와의 결투>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싫어하기 마련인데, 이게 아예 너무 심하게 차이가 나버리면 오히려 어떤 캐릭터처럼 느껴지면서 의외의 희한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마루야마 겐지도 그런 느낌이다.



⭐️⭐️




“새장에 갇힌 새를 죽여도 때까치가 먹을 수는 없다. 먹이라면 좀 더 편한 방법으로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때까치는 매일 집 주변을 서성이며, 아침부터 밤까지 무의미한 목숨 걸기 도박에 열중하고 있다. 나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이쯤에서 손을 떼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것은 내가 졌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때까치를 모욕했다는 뜻도 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남자라면 제로에서, 몸 하나에서 출발해야 한다. 스무 살이 넘었으면 부모에게 무엇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중에서도 오토바이는 자기 돈으로 손에 넣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오토바이는 자립과 독립의 정신을 상징하는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국산차처럼 걸터앉아 기어를 저속에 넣고 단숨에 스로틀을 열었다. 그러자 이게 어찌된 일인가. 순간적으로 앞바퀴가 허공으로 높이 솟구쳐, 나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길들이지 않은 말이었다.
나는 “재미있는데”라고 중얼거리고 다시 한 번 그 말에 올라탔다.”

“나는 죽을 때 어쩌면 지프나 오토바이에 탄 채 절벽에서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때가 계절상 가을이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단풍 속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숨을 거두고 싶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해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꼰대력과 불필요하게 강한 ‘남성미’가 철철 흘러넘치는데 그게 일관성이 있다 보니 왠지 밉지는 않다. 물론 현실세계라면 멀리 피해 다닐 스타일이지만.

몇 달 전에 친구가 놀러 와서 아이를 데리고 셋이 집 뒷산에 오른 적이 있다. 야트막한 산이라 금세 정상까지 오르고 반대편으로 슬슬 내려갔다. 내려가 보니 그곳에 작은 족구장이 있고 아저씨 대여섯 명이 열심히 넷트에 공을 차고 있었다. 그전까지 조용하던 아저씨들은 나와 친구가 지나가나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공을 차면서 이야아아아압 하고 쓸데없이 기합을 내지르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있자니 그때의 아저씨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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