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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Jan 27. 2019

가장 첨예한 시선

<단 하나의 문장>

문장은 짧고 단순해야 한다, 독자를 가르치려 들면 실패한다,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건 안된다 등등. 오늘날 소설을 쓸 때 거의 ‘기본’으로 간주되는 항목들이다. 이런 지점을 생각하면 구병모 작가의 소설은 참 특이하다. 한 문장이 짧게는 2~3줄부터 시작해서 길게는 10줄이 넘어가기도 한다. 한 문단이 아닌 한 문장이 말이다. 화자는 늘 ‘설명충’으로 하나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구구절절, 시시콜콜, 일일이, 자세히 설명한다. 읽다 보면 작가가 세상에 대한 짜증으로 머리털 하나하나까지 곤두서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누구 하나 편들지 않고 ‘모두 까기’를 하는 수준이다. 위선은 위선대로, 야만은 야만대로, 오지랖은 오지랖대로, 개인주의는 개인주의대로.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는 것.

구병모 작가의 신작 소설집인 <단 하나의 문장>을 출간도 전에 예약 구매해놓고 뒤늦게 읽었다.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은, 크게 여성 및 엄마로서의 삶,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을 살며 겪고 생각했던 문제들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 소설 속 피씨하지 못한 대목이 문제가 되고 조리돌림 당한 뒤 결국 펜을 놓게 되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남편을 따라 시골로 이사 갔다가 오지랖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오는 임산부, 수영장에 갔다가 방임하는 부모 대신 자신에게 치대는 무례한 아이들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교양 있는’ 주부, 약물 테러로 신체가 여성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곤란을 겪는 한 남성, 노동착취를 당하는 비정규직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그려낸다.

읽어보면 앍겠지만 신랄함이 정말....이 사람하고만은 정말 싸우고 싶지 않은 느낌. 왠지 키배도 엄청 잘 뜰 듯 하다. 너무도 현실적이고 리얼하며 자비나 이해나 관용 따위 전혀 없는 날 것 그대로의 결말은 읽고 나서 늘 속을 답답하게 만든다.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여성작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신랄함이 다른 이들에 비해 인기가 덜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SF도 잘 쓰고 현실물도 잘 쓰고 단편도 잘 쓰고 장편도 잘 쓰는 갓병모 작가님, 늘 꽃길만 걸으시길.


⭐️⭐️⭐️




그리 오래지 않은 SNS 경험에 따르면 그곳의 말들은 전기포트 속 물방울이었다. 포르르 끓다가 부서지는 거품이 수면에 다시 합류했다. 일부는 증발하여 공기 중을 떠돌았다. 그대로 두면 물은 식었다. 때를 보아 스위치를 넣으면 다시 끓어 방울진 거품의 토대가 되는 수면의 높이만큼은 어느새 눈에 띄게 낮아진다는 사실이, 예정된 부서지에도 불구하고 말을 그치거나 가두지 않는 이유일 터였다. 그런 점에서 몇몇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난장이라는 인식 정도는 있었지만, 세상은 아무렴 주전자보다는 크고 넓을 뿐더러, 그 유의미에 내가 뭔가를 보태기에는 에너지가 빈곤했다. 저마다 입에 칼을 물고 손에 도끼를 들었는데도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전기적 신호의 공간에서 최상의 포지션은 구경꾼이었다. 안 그래도 충분히 바쁜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p.24,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육체적 실무와 감정 노동을 제외하더라도, 누구도 증오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환멸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삶을 꾸리는 일이란, 생각보다 높은 열량을 필요로 했다. 친밀한 사람들 - 그보다는 서로 조심해야 할 관계로 이루어진 그물망을 유지 보수하기 위해 단순성과 모호성을 동시에 장착하고 자유로이 구사해야 했다. 삶을 오엑스 퀴즈로 간주하고 그 중간에 발을 걸쳤다가, 어느 쪽으로든 건너오라는 요구를 받으면 다수가 선 자리로 이종하는 식이었다. 반드시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한 제스처라기보다는,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자 최소한의 올바름이었다. -p.25,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이런 어르신에게 ‘여자들이’ 애를 안 낳는다는 사고방식부터 바뀌어야 아이들이 태어날 거라는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거나, ‘다들 먹고살기 힘들어서요’ 같은 최소한의 이유를 첨언해보았자 좋을 일은 없다는 걸 정주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몇몇 신문에서 불러주는 대로 그것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한편, 사람의 출산을 발목에 감기는 기름진 흙이나 젖과 꿀이 흐르는 영토에서의 추수 같은 일련의 풍요와 긴밀히 관련짓는 구시대적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건 세상을 향한 통로가 마땅치 않아서일 것이며 그걸 탓할 수는 없었다. -p.54,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정주는 문득 러시아워에서 어깨를 부딪치거나 서로 발을 밟고 밟히는 사이였던, 다시 스쳐갈 일 없으며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 수천수만의 얼굴들이 그리워졌다.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새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환멸과 친밀은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는 값싼 동전의 양면이었고, 이쪽의 패를 까거나 내장을 꺼내 보이지 않은 채 타인에게서 절대적 믿음과 존경과 호감을 얻어낼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p.84-85,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평소 우려스럽도록 살찐 사람들을 대할 때, 서영은 그들이 자기 관리를 게을리한 결과일 뿐이라는 편견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당위쯤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비롯 학습된 인지상정에 불과하더라도. 그러나 남매의 아비는 저 폼나 보이는 선글라스만 벗으면 그 아래에서, 사람들의 선입견을 충실히 반영한 은둔형 외톨이의 상상도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벽은 일본 거유 소녀들의 그림으로 도배하고, 제 손 같은 동족의 족발이나 치킨을 뜯으며, 게임 속 여신과의 연애에 푹 빠져 현실을 잊는 거구의 여드름투성이 안경쟁이. 체구나 피부가 어쨌든 스마트폰 아니라 책이라도 들여다보고 있었다면 좀 달리 보였을지도 모르나, 놀러 와서 책 읽을 남자 같으면 애당초 제 새끼들이 남에게 민폐를 끼치고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았으리라며 서영은 피식 웃었다. -p.108, 지속되는 호의




개중엔 멀리까지 나가기가 번거로워 아이 손목을 잡고 코앞 편의점이나 커피숍에 무턱대고 들어가 화장실을 쓰게 해달라는 부모들도 많있지만, 물건을 사지도 않고 남의 영업장에 딸린 화장실만 찾는 건 방광이나 대장이 터지기 오 초 전의 응급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매우 무례하며 개념 없는 일이라고 상휘가 어릴 때부터 일러왔다. -p.115, 지속되는 호의




그럼에도 내가 가벼운 비난을 넘은 생물학적 응징을 받을 만큼 죄질이 나빴던 적은 없다..... 단톡방에 ‘편의점에 돌진한 김여사’ 같은 링크 올리고 시시덕거린 팀원한테도 경고 날리고 퇴장시켰던 나, 나는 정말로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뭐 알고 지내온 동안 네가 평타 이상 치는 사람이었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말이야. 그건 이 사회가 말하는 평타의 허들이 워낙 낮아서가 아닐까. 너 나름대로 퍽 준수하다고 여겼던 그거, 옵션 아니고 기본인 건 알지? 그거 인정받고 싶니? 그녀 어조가 다소 신랄하여 술이 깰 것만 같다. 딱히 내가 완벽했다는 얘길 하려던 건 아닌데? 그녀는 티슈라도 찾는지 가방 속을 들쑤시며 고개 젓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칭찬받을 일도 아니지. 그전까지 네가 나름대로 애썼다고 자부심을 피력한 부분은 사실 ‘고작’ 내지는 ‘최소한’에 속하거든. 그걸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은근히 있다는 것부터가 에러라고. 그리고 피해자가 되는 건 반드시 그럴 만한 일을 해서가 아니야. 내가 삼십오 년간 너희 김팀장 같은 자들의 마수에 얼마나 자주 노출되었는지 너는 상상 못할걸. 아니 이제는 짐작 가능하려나. 네가 가졌으면서도 호흡만큼이나 당연한 까닭에 가진 줄도 몰랐던, 반푼어치 권력을 박탈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말이야. -p.154-155, 미러리즘




그러나 알바 친구들, 아무리 열심히 살고 배우고 했대도 시간제 교대하는데 위기 상황에 대응 잘할 수 있습니까. 그 기계를, 프로젝트 전체를 설계하고 프로그램 짰던, 데이터를 빚어내고 조작하는 이들과 완전히 대체합니까. 내내 그것만 들여다보고 팠던 이들과, 수시로 리필 갈아끼우는 학생 아이들과 비교를 가능합니까. 그래 놓고 막상 이래 급한 사고 생기면 위험하거나 때로 목숨 걸어야 할 일은 뿔뿔이 흩어진 자들 위험하거나 때로 목숨 걸어야 할 일은 뿔뿔이 흩어진 자들 다시 끌어불러서 외주로 맡기는 게, 정상인가요. -p.181, 웨이큰




나는 말이지요, 세상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나 뛰어난 위인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리 툭 튀어나온 송곳처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뭐 낭중.... 가죽을 뚫고 나온다 하던데. 그러나 뚫고 나오면 뭐할 거냐고, 수틀리면 잘라내버리지 않나. 나는 한 개 한 개의 송곳이 유난히 튀어나오기보다, 그걸 감싼 가죽이 튼튼하기 바랍니다. 한 개의 송곳이 뾰족 뚫고 나오지 않아도 되는 질기고 억센 가죽 주머니를 원해. 사람이 위대하지 않고서도, 사랑이 위험하지 않고서도 그 꼴이 유지되거나 이루어지는 자리를 바라요. -p.182, 웨이큰




그래야 사람들이 희생자의 꽃다운 나이와 펼치지 못한 아까운 인생에 대해 보다 즉각적이고 생리적인 반응을 보이며 대형 사고 및 재난에 경각심을 가지게 될 터. 그것이 떠난 이들의 영혼이 이 지상에서 수행하는 마지막 역할이다. 이때 그들이 인간이기에 풍길 수밖에 없는 냄새를 지우고 가능한 한 최고 수준의 전인이자 인격체로서의 흔적만 남겨야 할 터. 무조건적 애도를 받아 마땅한 위치에 그들의 이름을 올려 클릭 한 번을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미디어의 본분. 분명 사실도 있고 진실도 있는데 그중 쓸 만한 화소의 조합으로 인해 원래의 발화와 뉘앙스와는 사뭇 다르게 번역되는 진술들. 한때 내가 했던, 지금도 남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고 다듬을 때 종종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인데 이때 숭배할 만한 대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서사적 전략이며,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일수록 미모가 뛰어날수록 그 대상으로 등극할 가능성은 무한등비수열로 높아진다. 그와 함께 당초의 사건에서 가장 중요도 높게 다루어졌어야 할 본질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p.208, 사연 없는 사람




그리고 나는 말의 파편 속에 잠기거나 말의 삭아 부스러진 로프에 감겨 꼼짝도 못하는, 무기력한 가난뱅이다. -p.251,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나는 왜 쓸까요.
소설이 원래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인가요.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요.
또는 반드시 무언가를 주어야 하는 것인가요.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내게 말해준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p.270, 오토포이에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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